당뇨 고위험군으로 살기
2014년,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나는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곤 했다.
“그거 출산하면 괜찮아지는 거 아니었어요?”
“나도 그랬었는데, 출산하고 좋아졌는데……”
처음엔 나도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내 몸은 달랐다.
출산 후 한 달이 지나, 예약된 내분비대사내과를 찾아갔다.
정상으로 회복되었기를 기대하며 의사 앞에 앉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정반대였다.
“수치가 크게 좋아지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식단 조절을 꾸준히 하셔야 해요. 나중에 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부터는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서른넷.
그 나이에 ‘당뇨병’이라는 말을 듣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충격이었다.
“당뇨가 온다고요?”
믿어지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
싸늘한 기분으로 몸을 추슬러 진료실을 겨우 나왔다.
출산 전까지 하루에 일곱 번씩 손끝을 찔러 혈당을 재던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앞으로는 평생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니.
그 말은 암 선고만큼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2016년, 친정엄마가 심혈관질환으로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으셨다.
매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약을 복용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해 숨이 막혔다.
그날 이후, 나는 ‘당뇨 고위험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아직 혈당 수치는 정상 범위 안에 있었지만, 임신성 당뇨 병력에 가족력까지 있으니 언제든 당뇨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낯선 환경, 친정과는 다른 생활방식, 마음 놓고 편해질 수 없는 공간.
그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만성적인 수면 부족…
하나씩 되짚어보니 위험은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몸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나는 ‘당뇨 전 단계’는 아니었지만, 이미 그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6월, 임신 24주 차. 당뇨 선별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아기 시럽처럼 달고 끈적한 오렌지 맛 당분 음료를 마신 뒤 혈당을 쟀고, 수치는 기준치를 넘었다. 확진 검사 결과는 ‘임신성 당뇨’.
그날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째 임신 때는 아무 문제없었고, 친정엄마 외에 특별한 가족력도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나름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당뇨’라는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 일곱 번의 혈당 체크.
아침에 눈을 뜨면 손끝에 바늘을 찔렀고, 식전과 식후 두 시간마다 혈당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잘 먹고 잘 쉬라’ 던 임신은 어느새 ‘계산하고 조심하며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탄수화물 하나, 간식 하나도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했고, 맛보다 혈당을 먼저 살피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천안의 S 대학병원 내분비대사내과와 서산의 산부인과를 오가며, 출산 전까지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았다.
혈당 수첩엔 매일 숫자들이 빼곡히 채워졌고, 내가 먹은 음식은 ‘기억’이 아닌 ‘기록’이 되었다.
다행히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2014년 9월 7일, 39주 차. 새벽 3시 진통이 시작되었고, 아침 8시 무렵 병원에 도착해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둘째를 품에 안았다.
자연적으로 세상에 나와준 둘째에게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출산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뒤 병원에서 들은 말처럼, 내 몸은 당뇨 고위험군에 속해 있었다.
혈당 수치는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앞으로는 평생 ‘당뇨병 예방’을 하며 살아야 했다.
그때부터 난 ‘조심’, ‘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살았다.
음식 앞에서, 피로와 스트레스 앞에서, 항상 먼저 물어야 했다.
“괜찮을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당뇨 고위험군 꼬리표 덕분에 나는 내 몸을 챙길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몸의 신호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요리를 할 때에도 건강과 연결 지어 생각하니 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저절로 공부도 되었다.
그렇게 관리하며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삶은 또 한 번 나를 흔들었다.
셋째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그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몸은 뒷전이고 오로지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서 신체적, 정신적 과로가 쌓여갔고, 잠은 부족했으며, 마음은 늘 불안했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자존감을 떨어뜨렸고, 몸의 균형도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당뇨 고위험군’에서 ‘당뇨 환자’라는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