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그 참을 수 없음에 대하여

과연 이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by 홍성화

2020년 4월 15일 새벽 3시 20분.
여덟 살 첫째가 “엄마, 긁어도 긁어도 가려워 미치겠어요”라며 엉엉 울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아이의 손톱은 쉴 새 없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 작은 손목을 붙잡은 채, 가려운 부위를 톡톡톡 두드리며 밤을 새웠다.


2020년 3월부터 9월까지, 그런 날들이 매일 이어졌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어린아이가 어떻게 지나왔을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진다.


어느덧 첫째가 아토피에서 벗어난 지 5년이 지났다.

한창 치료 중이던 때 읽었던, 방성혜 한의사의 책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를 다시 꺼내 들었다.

겉표지를 펼치자마자, 잊고 있었던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아토피 이 죽일 놈. 두고 봐! 내가 이길 테니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가려움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그대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조선의 임금 영조도 이렇게 말했다.
“가려운 것이 아픈 것보다 더 참기 어렵다.”
“가려울 때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된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오래 눌러두었던 내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수백 년 전의 임금조차도 가려움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니, 더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영조의 목소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와, 마치 첫째의 고통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그 말은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온몸을 울렸다.


2017년, 원인 모르게 두피가 가려워 한 달 가까이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한 번 긁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고, 긁으면 잠깐 나아지는 듯했지만 곧 다시 간지러워 벅벅 긁어댔다. 아토피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때의 경험 덕에 아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가려움은 불편함을 넘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계속 긁다 보면, 살은 붉게 달아오르고 열이 난다.

피부 밑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뒤따른다.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고, 피가 나도 긁는 것을 멈추기 어렵다.

긁으면 잠시 가라앉는 듯하지만, 곧 불길은 더 크게 번져 온몸을 집어삼킨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미치도록 가려운 걸까?
그 중심에는 ‘히스타민(histamine)’이라는 작은 물질이 있다.

꽃가루나 특정 음식처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오면, 몸속 면역세포는 적을 막아내듯 비만세포(Mast cell)에서 히스타민을 쏟아낸다.

이 물질은 피부 신경 수용체에 달라붙어 ‘가렵다’는 신호를 뇌로 보낸다.

본래는 몸을 지키려는 방어 작용이지만, 지나치게 분비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피부는 금세 붉게 달아오르고, 긁으면 긁을수록 더 가렵고,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긁힌 피부는 염증을 불러오고, 염증은 또 다른 히스타민을 끌어내어 ‘가려움–긁음–손상–재발’의 악순환을 이어 간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결국 첫째는 매일 밤 몸을 미친 듯이 긁어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토피를 겪는 이들이 “가려워 미치겠다”고 말하는 것은 피부 문제만 뜻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지르는 비명이라고 할 수 있다.


6개월 동안 첫째의 아토피 치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단지 밤마다 아이의 손목을 붙잡은 엄마가 아니었다.
함께 아토피를 앓는 또 하나의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려움은 아이의 몸을 찢었고,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긁지 못하게 막던 손은 억제의 손이 아니었다.
함께 버티는 손, 사랑으로 싸우는 손이었다.


불교에서는 집착을 ‘갈애(渴愛)’라 부른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처럼, 가려움 또한 긁어도 긁어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점이 닮았다.

그러나 목마름을 넘어서는 길이 있듯, 가려움도 결국 시간과 사랑 속에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악순환에도, 멈춤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 과정을 함께 버텨낸 첫째와 나는, 이전보다 강해졌다.


아토피는 아무리 심해져도, 아토피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동시에, 그 미칠 듯한 가려움 속에서도 버티고 이겨낼 힘을 길러 준다.
우리는 그 고통을 통해 서로를 붙잡는 법, 사랑으로 치유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다짐한다.
“가려움, 네가 아무리 우리를 짓밟으려 해도, 결국 이기는 건 사랑이다.”


“미칠 듯한 가려움 속에서도, 사랑이 결국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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