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혀있는 줄만 알았던 그 문은 사실 오래전부터 조금씩 삐걱이며 열리고 있었다.
2023년은 지금 생각해도 유난히 예민하고 복잡했던 해였다. 내 몸은 낯선 신호들을 쉴 새 없이 보내왔고, 감정은 이유 없이 솟구쳤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욱, 화가 치밀었고, 나조차 내가 낯설었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그저 자주 하는 질문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 분노가 솟구쳤다. 아이들이 “엄마 요즘 이상해요. 화낼 일이 아닌데 화를 너무 잘 내요”라고 말했을 때, 그제야 나는 멈칫했다.
이유 없이 몸이 무겁고, 지치고, 허덕였다. 퇴근 후에도 또다시 부엌으로 ‘출근’ 해야 하는 현실이 전과 달리 너무 화가 났다.
결혼 이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퇴근하면 밥이 차려져 있기를 늘 상상한다. 나도 누군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고 싶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쉬고 싶은데… 왜 나만 매일같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식구들 밥을 차려야 하는 걸까?
일곱 명이 함께 사는 집에서 빨래만 해도 기본 서너 번. 왜 이 집의 ‘엄마’인 나만 이렇게 내 집에서도 종종걸음을 걸어야만 할까. 정말, 더럽게 억울했다.
그해 생리 주기가 또다시 흔들렸다.
원인도 모른 채 들쑥날쑥하더니, 일단 시작하면 수돗물 튼 것처럼 콸콸 쏟아졌다. 오버나이트도 소용없었다. 샐까 봐 조마조마했고, 몇 번은 근무 중에도 집에 다녀와야 했다. 심지어 생리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또 시작된 적도 있었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신호였다.
그러다 2023년 12월 6일, 아이들 학교에서 ‘감정 오일 테라피’로 학부모 힐링 연수를 받았다. 강의 막바지에 소개된 ‘궁테라피’라는 말에 귀가 번뜩였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강사는 자궁을 ‘구중궁궐’에 비유했다. 겹겹의 문으로 둘러싸인, 임금이 머무는 궁궐의 심장처럼, 여성의 몸속 깊은 골반에도 그러한 궁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정란이 착상되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이 신성한 공간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스럽게 돌봐야 할 내 안의 궁궐로 바라보자는 이야기였다.
강사의 표현에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그동안 외면해 왔던 것은 신체 기관으로서의 자궁이 아니라 나만의 ‘궁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50세 전후로 폐경을 맞이한다. 그러나 폐경을 맞기 훨씬 이전부터 폐경기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보통은 2~8년, 때에 따라서는 10년 전부터 나타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결코 피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완경기로 가고 있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무시해 버렸다.
호르몬 변화로 내 궁궐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가 여럿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부정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그러기엔 너무 젊다고, 남의 일처럼 여기곤 했다.
산부인과에서도 아직은 폐경이 아니라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불편한 증상들로 인해 호르몬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내 몸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신호에 무조건 약으로 대응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주위에서 호르몬제 복용 부작용으로 힘들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부작용을 내 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약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약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 안의 궁궐을 직접 돌보는 길을.
중요한 건 이것이 병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 신호는 202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멈췄던 생리가 49일 만에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당시엔 ‘일시적인 이상’이라 여겼지만, 되짚어보니 그때가 바로 시작이었다. 정확하게 28일 주기로 찾아오던 월경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내 자궁은 이미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요.”
나는 그때, 나의 궁궐을 놓치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내 안의 궁궐과 진짜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향이 좋다고 하니 천연 에센셜 오일도 써보고, 따뜻하게 해 주라고 하니 온찜질도 해보고. 무엇보다 그동안 피하고 싶었던 내 몸의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부터 새벽에 깨서 보니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고 런닝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 있었다. 연속 4일 동안이나.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몸이 정리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일종의 호전반응 같은 거였다. 마치 오랫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내 몸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61일 만에 다시 월경이 돌아왔다. 그 순간의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26~28일 주기로 규칙적인 생리가 이어지고 있다. 양은 여전히 많은 편이지만 샐 정도는 아니다. 색도 건강한 선홍빛이고, 뭉침도 없다.
산부인과 검진에서도 “전에 있던 근종도 사라지고 깨끗하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물론 이것이 내가 시작한 관리법만의 효과인지, 아니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다시 내 몸에 집중하고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향이 은은한 천연 에센셜 오일로 호르몬 균형을 잡아주는 블렌딩 롤온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 생강차 같은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 밤마다 아랫배를 온찜질하는 것, 그리고 충분히 쉬려고 노력하는 것. 작은 것들이지만 몸이 가벼워졌고, 마음도 덩달아 안정되었다.
예전에 신경 쓰였던 질염이나 가려움, 분비물 냄새 같은 것들도 많이 개선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돌본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
이런 변화들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시간이 흘러서일 수도 있고, 몸에 더 집중하게 되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상 내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궁은 말없이 견디는 궁궐이다. 몸이 아무리 흔들려도 그곳은 생명을 품고, 시간을 지켜낸다. 나는 이제 내 안의 궁을 외면하지 않는다.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나를 여왕처럼 돌보기 위해.
몸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변화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그것이 나를 돌보는 삶의 시작이다.
모든 여성의 몸이 다르고, 모든 경험이 다르다. 나에게 맞았던 방법이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효과가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 자신과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으로서의 나, 존재 그대로의 나를 다시 껴안을 수 있게 된 이 여정이 누군가에게도 큰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