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짧은 실험 영상 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투명한 컵에 맑은 물이 담겨 있었다.
그 안에 흙을 한 줌 집어넣자 순식간에 물은 탁해졌다.
실험맨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숟가락으로 컵 안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이 컵이 제 인생이라고 해봅시다.
살다 보면 마음이 이렇게 탁해질 때가 있어요.
힘들고, 지치고, 더러워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탁함을 없애려고 하죠.
계속 퍼내고, 퍼내고, 또 퍼내고…”
하지만 아무리 퍼내도 컵 속의 물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깨끗한 물병을 들고 와 컵에 조용히 그 물을 붓기 시작했다.
맑은 물이 계속 들어오자 탁한 물이 넘쳐흘렀고, 어느새 컵 안은 다시 투명해졌다.
“답은 이거예요.
더러운 걸 없애려 애쓰기보다, 좋은 걸 계속해서 채우는 것.
그러면 언젠가, 내 안도 맑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 장면이, 첫째의 아토피 치료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에는 단지 왼쪽 발목에 50원짜리 동전크기 만한 습진이었다.
병원에서 준 약을 바르면 금세 가라앉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올라왔다.
그걸 무려 6년이나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피부과에서 들은 한마디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환자 하루에 백 명도 더 와요.”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날 뜯지도 않은 연고들을 몽땅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감정적으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순간,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약을 끊자 리바운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토피 부위가 점점 넓어지더니, 결국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졌다.
얼굴도 퉁퉁 붓고 갈수록 내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전신 아토피. 그제야 알았다.
지금껏 약으로 눌러온 그 6년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시간이었는지.
그건 마치 수면 아래 감춰진 빙산의 거대한 실체를 마주한 것 같았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어 착잡했다.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6개월간 잠을 설치며 버텨낸 시간을 통해 확신하게 된 한 가지가 있다.
2020년 9월, 첫째의 아토피는 완전히 사라졌고, 2025년 지금까지도 매끈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이 치유를 이끈 건 ‘없애려는 노력’이 아니라 ‘채우는 힘’이었다.
나는 셋째의 면역 조절을 위해 먹이고 있던 글리코영양소를 첫째에게도 똑같이 먹였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라 경제적 부담이 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건 단순한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아이의 세포를 청소하고 독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내가 클린 한 원리와도 같다.
그런 다음 세포를 재생시켜 무너진 피부 장벽을 다시 쌓는 데에도 글리코영양소는 충분히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먹였고,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렸다.
억지로 덜어내기보다 조용히 좋은 것을 채워주는 일, 그 일이 아이의 몸을 바꿔놓았다.
지금도 첫째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병원 약으로도 안 나았는데, 엄마가 고쳐줬잖아.”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그건 내가 고친 게 아니라 몸이 스스로 치유한 거라고.
나는 단지, 맑은 물을 계속해서 부어준 것과 같았다.
덜어내려 애썼던 시간보다, 성실히 좋은 것을 채워주었던 시간이 아이의 몸을 바꾸었고, 우리의 삶도 바꾸어놓았다.
어쩌면 치유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몸의 탁함, 마음의 상처, 아이의 병마저도 애써 없애려 하기보다,
그저 좋은 것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일.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날 투명해진 물컵처럼, 맑아진 아이의 피부와 함께 내 마음도 다시 투명해졌다.
첫째의 몸은, 치유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해 준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