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또 다른 러너스 하이, 코파이바

깊은 숲 속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평온

by 홍성화

20대 초반, 나는 무작정 5km 마라톤에 나간 적이 있다.
훈련도 준비도 없었다. 그저 젊음 하나로, 달리기쯤이야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리기는 달랐다. 10분쯤 지나자 호흡이 가빠지고,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

그 마음 하나로 버텼지만, 20분이 지나면서 다리는 후들거렸고 주저앉고 싶은 유혹이 몰려왔다.

결국 속도를 늦춰 조깅하듯 달렸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5km를 40분 걸려 완주했다.


완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연습 없이 뛰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만약 10km였다면? 꾸준히 몸을 만들고 훈련을 했다면?
아마 나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러너스 하이.
계속 뛰는데도 통증이 덜 느껴지고, 마음은 한층 평온해지는 몰입의 순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달리기를 시작하면 근육은 에너지를 급격히 소모한다. 혈액 속 산소와 당이 줄어들며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그 고비가 지나면 몸은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전환된다. 동시에 뇌에서는 엔돌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통증은 둔화된다. 그렇게 몸이 달리기에 적응하면서 찾아오는 평온함, 그것이 바로 러너스 하이다.


알고 보니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의 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하고 속삭이며, 우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몸의 응원이었던 것이다.


특히 ‘엔도카나비노이드’라는 낯선 이름에 마음이 끌렸다.
이 물질은 필요한 순간, 필요한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졌다가 금세 사라진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곁에서 재빨리 손을 내미는 엄마처럼, 즉각적으로 고통을 달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2023년 겨울, 아로마테라피 공부를 하다 코파이바 오일을 알게 되었다. 순간 그때 배운 코파이바 성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코파이바는 아마존 열대우림 깊은 숲 속에서 20m까지 자라는 나무다. 나무기둥에 구멍을 내면 진한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그 진액에서 얻은 것이 코파이바 오일이다. 브라질 원주민들은 예로부터 이것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해왔다고 한다.


향도 부드럽고 맛도 순한 이 오일에는 β-카리오필렌(β-caryophyllene, BCP)이라는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대마초에 들어 있는 카나비노이드와 비슷하지만, 안전하게 작용해 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 몸에는 CB1과 CB2라는 두 가지 수용체가 있다. CB1은 주로 뇌에서 정신적 변화를 일으키고, CB2는 면역계와 말초 조직에서 염증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한다. 신기하게도 코파이바의 성분은 오직 CB2에만 작용해 부작용 없이 몸의 치유 능력을 돕는다.

즉, 운동으로 얻는 러너스 하이의 평온함을, 숲의 나무 진액 한 방울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감탄했다.
“자연은 정말, 우리 몸과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구나.”

그때부터 코파이바 오일을 쓸 때마다 숲의 나무가 내 신경 회로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가 몸과 마음을 단련하듯, 코파이바는 매일 나를 본래의 평온으로 이끌어 준다.


나는 일상에서 이렇게 활용한다.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코파이바·페퍼민트·생강 오일을 식물성 캡슐에 담아 소화제 대신 삼킨다. 아이들은 소화기 점막이 예민하므로 같은 조합으로 만든 롤온으로 배를 문질러준다. 명치가 답답하다며 울상을 지을 때, 따뜻하게 시계 방향으로 돌려 마사지해 주면 아이들은 이내 편안해진다.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는 병뚜껑을 열고 향을 맡는다. 그러면 몸이 기억하고 있던 평온이 되살아난다.


물론 에센셜 오일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농도가 높기 때문에 반드시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고, 임신 중이거나 특정 질환이 있을 때는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이런 주의사항들이 코파이바의 놀라운 지혜를 빛바래게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또 다른 러너스 하이가 아닐까.
억지로 만든 평온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지니고 있던 균형을 일깨워주는 힘. 마치 오랜 친구가 다정히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한, 자연의 지혜 말이다.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 끝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삶과 자연이 서로 맞닿는 순간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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