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나온다

쉬워 보일 뿐 쉽게 써지지 않는다

by 홍성화

가사에 꽂혀 무한 반복 듣고 있다.

노사연의 <바램>이란 곡이다.


평소에 듣지 않던 노래를 계속 들으니 남편이

“당신, 갑자기 왜 이렇게 올드한 노래를? “

그런다.

아이들도 이상해 보였는지

“엄마, 왜 똑같은 노래만 자꾸 들어요?”라고 물었다.


모르겠다.

처음엔 누구 노래인지도 모르고 가사에 집중해 듣다 뭐에 홀린 듯 아예 반복 설정 해놓고 듣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한밤중까지 며칠째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겨우 글씨가 써졌다.


책을 읽을 때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문장을 만나면 그 속에 푹 빠져버리듯,

노래 역시 그랬다.


어떻게 알았지?
순간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게 노래에서도 통했다.

노랫말이 하나하나 다 인생이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또 짧은 인생,

4분 38초 노래 속에 다를 것 같지만 너나 나나 비슷한 인생이 들어있다.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중략)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친정 엄마 생각도 났다가

결혼 후 대식구 속에 그간의 내 삶도 보였다가.


나도 아이들도 모두 각자 자리에서 바쁘지만

특히 남편이 요새 제일 바쁘다.

본인의 업이 그렇다 보니

나의 앞, 뒷일의 인과 관계를 모른다.

그저 책상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는 모습만 보고는 한마디 건넨 것이

“갑자기 왜 이렇게 올드한 노래를? “

이었다.


말이나 하지말지! 속으로만 내뱉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고 내 시간을 갖게 해 주면 되는 것을…

남편도 못해주는 공감과 위로가 노래엔 들어있었다. 인생도.


가을이라 감성에 젖는 이유도 있겠지만

마흔다섯이 감상에 빠지게 했다.

중년이라 하니 엄청 나이 든 것 같지만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서 센티해지는 건 그만큼 내 인생도 짙어져가고 있다는 뜻일 거다.

너무 앞만 보며 달리지 말고 주변도 좀 보라고 건네는 것일지도.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농익어가는 삶”

나도 한때는 늙으면 인생이 끝난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서른, 마흔은 평생 안 올 줄 착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금방이었다.

정작 마흔이 허들 넘듯 훌쩍 넘고 보니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지만 정말 괜찮은 사림들이 주위에 남았고, 그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니 만날 때마다 응원과 대화가 짙어 즐겁다.

지금은 한 해 한 해 익어가는 느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늙어가는 즐거움이랄까

20대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중년이 되어 알아가는 새로움이 있다.

앞으로도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더 무르익어가면 좋겠다.

깊이 있는 독서와 사색, 글쓰기, 시 같은 노래들, 좋은 사람들이 힘이 되겠지?




[바램] 노래를

계속 듣는데도 좋았다.

노사연 씨가 2015년에 신곡으로 발표한 노래라는데, 지금 들어서 좋은 걸 안다.

2015년에 들었다면 한 번 듣고 말았을 것이다.

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얼음을 녹이듯 마음을 녹인다. 따뜻하다. 끈끈해진다.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환 씨는 과거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음악을 만들려면 하루에 서너 곡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찍어내는 것이다. 감성과 마음과 진실함과
솔직함이 들어있어야 한다.

노사연이라는 가수의 이미지와 색깔, 살아온 배경과 가사의 낱말 하나하나를 찾아 다시 들어보고 생각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사연 씨에게 이런 노래를 줄 수 있어 나에게도 큰 행운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당시 노사연 씨는 돌발성 난청과 우울증, 갱년기 증세를 겪고 7년 만에 새롭게 부른 노래라 했다.

가사를 들을 때 왜 눈물이 났는지 또 다른 이유에도 공감이 갔다.


이렇듯 나 역시 느낌에 맞는 글자를 쓰기 위해

쓰고 쓰고 또 쓴다.

써도 써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계속 쓴다.

그러다 보면 써진다.

나온다. 내가 원하는 느낌에 가까운 글자가.

이런 자기만족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해도

나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멈출 수가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글씨를 쓸 땐 그런 편이다.

글도 그렇고.

글이 주는 느낌과 글씨에서 뿜어 나오는 느낌이 포개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없는 100% 내 느낌대로 쓴 ‘바램’ 두 글자!

머리로 생각하면 이 글씨가 안 나오는 데

자꾸자꾸 쓰다 보니 나왔다.

역시 써야 해. 글씨든 글이든.


* 전체 가사를 덧붙입니다.

바램

노사연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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