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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슬프고도 잔인한 노란색 옷

'옷을 입는 여자'

by 소재수집가
옷을 입는 여자_2025년 12월 4일


패션소재에서 컬러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결정짓는 가장 직관적인 요인이며, 제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가장 먼저 전달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컬러는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문화권마다 시대마다 전혀 다른 감정과 상징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특히 인디언 옐로(indian yellow)는 가장 양가적인 의미를 품은 색 가운데 하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다 똑같은 블루"라고 말하는 앤디(앤 해서웨이)에게 버럭 하듯 던지는 대사가 있다.

"앤디, 넌 너의 스웨터가 단순한 블루가 아니란 걸 모르는구나? 그건 터쿼즈(turquoise)가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cerulean)이야"

블루가 다 같은 블루가 아니듯, 옐로도 다 같은 옐로가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디언 옐로는 유독 슬프고 잔인한 역사를 품은 색이다.


15세기 인도의 뱅골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색은 오랜 세월 동안 병든 소의 오줌에서 추출한 색으로 전해져 왔다. 어린 망고 잎만 먹이며 영양을 고의로 결핍시킨 소의 오줌을 모아 볕에 굳히고, 다시 색소를 추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들은 시름시름 앓고 방광 결석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어야 했다. 아름다운 노란색은 소들의 고통 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 색은 유럽 화가들에게는 혁명적인 노랑이었다. 인디언 옐로는 매우 선명하고 투명했으며, 빛에 강하고 물, 기름 모두에 잘 섞였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흔히 쓰이던 와우, 페네그릭, 사프란 등의 노란 염료들은 채도가 낮고 빛과 세탁에 약해 금세 바래는 문제가 있었다. 사프란(saffron)은 색은 아름다웠지만 지나치게 비싸고 불안정한 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7세기 네덜란드-영국-프랑스가 동방무역을 확장하며 인디언 옐로가 유럽에 들어오자 그 노란색은 단숨에 고급 예술 색소로 숭배되기 시작했다. 렘브란트, 터너, 고흐까지 수많은 유럽 화가들이 이 색을 사랑했고, 고흐의 강렬하고 눈부신 노랑 역시 인디언 옐로가 만들어낸 미학적 세계였다.


하지만 이 찬란한 색은 동시에 잔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색이었다. 결국 1905년경 윤리문제와 동물 학대 논란으로 제작이 금지되었고, 한 시대를 물들였던 아릅답고도 잔혹한 노랑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후 여러 업체들이 그 색을 재현하기 위해 수십 년간 연구를 거듭했지만, 원래의 인디언 옐로를 완벽하게 복원한 합성 색소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가 되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아이의 옷장이 아닌 나의 옷장에서 '노란색 옷'을 찾기란 쉽진 않다. 순수한 해맑은 어린아이의 몸 위에서는 병아리 같은 귀여움과 따뜻함을 남기는 색이지만, 유행과 아름다움의 규범으로 움직이는 여성복에서는 언제부턴가 그만큼 쉽게 선택되지 않는 색이 되어 있다. 아마도 노란색이 잔혹한 생산방식, 황제 권력에서 이단과 배척의 표식 등 복잡하게 겹겹이 남아 있는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시대는 노란색을 숭배했고 다른 시대는 노란색을 혐오했으며, 또 어떤 시대에는 광기와 천재성의 색으로 기억했다. 그렇게 급진적으로 의미가 뒤틀리고 전복되는 색은 흔치 않다.


노란색 옷 한 벌을 꺼내 입는 순간.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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