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글쟁이에게 필요한 것은 인사이트, 좋은 도구?
지적 생산의 기술 - 우메사오 다다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말이지만 다 읽고 책장을 닫은 것은 지난 3월의 중순이다. 문고판 270쪽인 책의 분량에 비해 진도가 늦은 편이다. 내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기술 서적이 아니다. 내용을 다 읽고 나면 정보 문헌학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집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쓰기 기술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일반적인 문장론보다는 사설(社說) 같은 느낌이 강하다. 현장조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조사론 사례집 같지도 하다.
이 책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책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일본인들의 글쓰기 수준에 대한 걱정과 그 대안(代案)이다. 또 그 내용은 우메사오 다다오*가 1965년 4월과 1968년 10월에 각각 이와나미서점**에서 발행됐던 '도서'라는 잡지에 연재된 내용을 하나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각 항목별 하나의 소책자처럼 구성돼있다. 제1장 발견의 수첩, 제2장 노트에서 카드로 등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 가이드북처럼 구성돼있다. 하지만 실용서로서의 가치는 높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책에 수록된 글들이 쓰인 시기 때문이다.
* 梅棹忠夫, 1920~. 교토대학 이학부 졸업. 전공은 '민족학'과 '비교 문명학'이다. 교토대학교수이자 국립민족학 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문명의 생태 사관』, 『지식 생산의 기술』, 『우메사오 다다오 저작집』(전 22권) 등이 있다.
** 株式会社岩波書店, Iwanami Shoten Publishers : 1913년 이와나미 시게오에 의해 창립.
저자는 저명한 사회학자였다. 그에게 조사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면서 동시에 골치 아픈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름 정리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고 심지어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 쓰기까지 했다.
이 책에는 자료조사, 정리의 도구와 사용법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돼있고 심지어 만드는 법과 구입 방법까지 안내한다. 하지만 이들은 1990년 전에 사용되던 방법이고 지금은 대부분이 일상에서 사라졌다.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젠 찾아보기도 어려운 도구와 옛날이야기로 가득한 책을 2018년 오늘날 굳이 읽은 이유가 뭔가?
이 책은 일상에서 얻게 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이나 '생활'이라는 차원을 벗어나 그 활동의 결과로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한 차원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글을 실용서적 또는 처세를 위한 자기관리 정보쯤으로 생각한다면 읽은 이는 민속 박물관을 구경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제는 글쓰기이다. 저자는 정보를 다루는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쓰기 훈련이 안되어 있음을 걱정한다. 글에서 동료 교수의 예도 들었다. 교수의 글에서 조차 형편없는 문장이 발견되는 것을 두고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한다. 이에 따라 관련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창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지적 생산의 기술에 대하여'를 연재하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다.
지금은 다른가? 저자가 젊은이들의 글쓰기 실력을 걱정하던 60년대 일본뿐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말과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적다. 누구나 창작이 가능한 시대가 저급한 유행을 만들어낸다는 우려는 이미 TV가 보급되면서부터 제기 되어온 것이다. Buggles가 부른 Video killed the radio star(1979)는 영상 문화의 건조함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했지만 지금 이 노래를 다시 만든다면 예전처럼 감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화를 만들고 수용(受容) 하는 주체들에게 일방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이야기한다면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저자의 '아이디어 노트'나 '인명 색인 카드'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처럼 그걸 써본 세대라면 그 시절 추억을 불러내는 매개물(媒介物)로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이것이 내가 오래 시간이 걸려서라도 이 책을 정독한 이유다.
일이던 취미이든 간에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글쟁이’라고 정의하자! 이 시대의 표현을 빌자면 칼럼니스트, 블로거, 인플루언스 등등,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는 저자 같은 이전 세대를 살아간 글쟁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한 번쯤 살펴보고 고민할 필요 있다. 정보 처리는커녕 그것을 수집하는 일 조차 어려웠던 그 시절, 정보는 매우 섬세하게 다뤄졌다. 자료 하나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었다. 필요한 자료 찾기는 더디어 인내를 필요로했다. 애초에 자료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글쓰기 자체도 불가능했다.
이런 노력들 끝에 그들에게 주어진 선물은 '독창성'이었다. 하늘 아래 제 스스로 만들어낸 콘텐츠는 있을 수 없다. 참고하고 영향받고 심지어 베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들인 끝에 결국 그걸 만진이의 향기를 지니게 된다.
반면 지금의 글쓰기는 너무나 쉽다.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이 정보 저 정보를 모아서 내 콘텐츠를 만들 내기도 한다. 창작과 모방의 경계가 사라진 지도 오래됐으니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쉽게 모을 수 있는 정보 때문일까? 아니면 요즘 미디어의 속성 때문일까? 글은 가볍다. 심지어 내 개성대로 쓴 글이라는데 어디서 본 듯하다. 정보의 취합이 편하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글쓰기에는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내게서 떠나는 순간 타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27412807
글을 잘 쓰려면 공부도 필요하다. SNS나 블로그를 통해 출판되는 많은 글들이 기본적인 문법을 무시한다. 감탄사, 의성어, 문장부호를 남발하면서 뭔가 강조하려고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글이 아닌 글, 소위 비문(非文)이다. 나 역시 이상한 문장을 열심히 생산하던 사람이다. 정식으로 기자 생활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예전, 나의 치기 어림과 무식함을 알게 됐다. 이런 글을 읽어 이해하려면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래서일까? 요즘 한국인들 중에는 난독증이 많다. 학력은 높은데 글을 읽고도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 못하는 신 문맹률도 높다. 여기서 잠깐, 나는 내가 쓴 비문이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들의 전투력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댓글 전쟁은 일방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넘쳐난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누구나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SNS들은 매스 미디어의 영역까지 잠식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인기 있고 잘 나가는 미디어가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지는 의문이다.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은 질보다는 량을 중시하고 편집자들은 기존에 잘 알려진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골라낸다. 따라서 검색 알고리즘이나 평가 시스템을 잘 이용하면 내 넋두리조차도 인기 콘텐츠가 된다. 지금은 좋은 콘텐츠와 인기 있는 콘텐츠가 연결되지 않은 시대다. 이런 시류(時流)에서 모든 글쟁이들이 전세기 한 학자의 '과도한 친절' 또는 ‘잔소리’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 맞는 말이 있다. 원래는 예수께서 하신 말인데 최근 내가 잘 쓰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와 '가진 자는 더 가지고 못 가진 자는 가진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