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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스트파이브 May 10. 2019

"서로의 고요함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특히 복잡하고 빠른 도시에 살고 있다면 더욱 그렇죠. 아무 알림이 없어도 10분에 한번씩 핸드폰을 쳐다보게 되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나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번 '어제 어디 갔어?'에서 만나본 분은 패스트파이브 피플앤컬쳐팀의 김하나 매니저입니다. 하나 님은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서 봤던 밤하늘을 다시 볼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일상이 지칠 때 마음과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곳,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어제 어디 갔어?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 밤에 가서 밤하늘만 보느라 몰랐지만 경치도 좋고 전망도 좋아서 ‘캠핑족’들에게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차 안에서 잘 준비를 해온 가족도 있었다. 두 달 전 갔을 때는 별을 촬영하려는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많았다. 이곳은 주위에 건물도, 가로등도 없다. 밤하늘을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조성한 것 같다. 

여기는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데려갔던 곳이다.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댁에서 봤던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싶다고 며칠 동안 이야기했더니 ‘별 보기 좋은 곳’을 찾아놨더라. 가는 길이 정말 어둡고 좁은 비포장도로여서 ‘여기가 어딘데?’ 라고 계속 물어봤다. 투덜대다가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눈앞에 오리온자리와 함께 수많은 별이 뜬 밤하늘이 펼쳐졌다. 



거기가 왜 좋아?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곳인 데다가 핸드폰도 켤 수 없다. (핸드폰을 두 시간 동안 안 보는 게 참 힘든 일이더라.) 주위가 정말 어두워서 불빛이 있으면 별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다. 차들도 전부 라이트를 끄고 있는다. 게다가 조용하다. 근처의 풍력발전소에서 풍차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다가 왔다. 말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다. 모든 스위치를 끄고 하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그 시간이 좋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봤자 밤하늘의 모습이 담기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내 감각과 느낌에만 집중해야 한다.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머리도 비워지고, 누군가의 의도에 부응할 필요도 없고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인증할 필요도, 뭔가를 즐길 필요도 없는 곳이다. 

원래 집은 울산이다. 울산을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서의 경험은 대체로 너무 치열했다. 취업 준비와 직장 생활을 한 도시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울은 생존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결과를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 공간이다. 청옥산에서는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통 여행을 가면 특별한 체험을 하고 싶어 한다 


개인적으로 평소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서 뭔가를 즐겨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부담스럽다. 날짜, 예산, 일정 등을 정하다보면 편하게 떠나기도 힘들다. 실제로 정작 온전하게 즐겼던 여행 경험이 별로 없다. 가족들을 케어해야 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문제 없이 흘러가게 해야 하고… 

이것과 비슷하게 SNS에서 핫한 공간에 가도 그 공간의 의도가 보이면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 벽 앞에서 사진을 찍어’ ‘이걸 먹어’ 라는 식의 요구사항을 수행해야 할 것 같다. 자연히 어떤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디자인, 소품, 분위기 등은 피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곳(패스트파이브 라운지)처럼 약간 헐거운 분위기가 좋다. 



김하나에게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란?


살면서 지칠 때 그곳에 가면 쉴 수 있을 것 같은 곳. 가족, 친구, 일… 일상의 모든 것이 지칠 때가 있지 않나. 가끔은 취미생활도 버거울 때가 있다. 취미로도 결과를 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청옥산은 진공 상태처럼 고요하고, 주위에도 서로의 고요함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이전 회사에서 퇴사한 뒤 3일 정도 기도원에 갔었는데, 청옥산이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예쁜 펜션 같은 곳에 도서관과 식당이 있다.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지냈다. 그렇게 며칠을 낼 수 없을 때는 집 근처의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있고는 했다. 생각과 고민은 많은데 그걸 해소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더 이런 장소를 찾았던 것 같다.

앞으로는, 살면서 힘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문득 집과 회사만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청옥산을 찾을 듯하다. 구름이 많아서 별이 보이지 않더라도 조용히 하늘을 보러 가고 싶다. 






너무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 너무 많은 스펙타클과 소음이 있는 도시에서 지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쌓이는 피로감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없이 고요한 곳에서 피로와 소음을 덜어내보는 건 어떨까요?

내일의 시간을 채우려면 빈 공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럼 다음 '어제 어디 갔어?'를 기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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