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하고 싶을 때, 20년 전의 오늘로 돌아갑니다.

by 정상가치

2045년의 미래에 타임머신이 발명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낼 수 있는 모든 돈을 지불하고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제 딸아이는 27살이 아니라 7살입니다. 지금은 대화도 서먹해진 딸이지만, 20년 전의 아이는 저를 보고 웃어주고, 종알대며 이야기합니다.


저만 하는 상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부모가 된다>에서 정승익은 아이들이 어릴 때 미래에서 왔다는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오후쯤 되어서 체력이 다 떨어질 때 스스로에게 다시 힘을 주는 방법으로 제가 미래에서 왔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 그렇게 제가 죽기 직전에 보너스로 살 수 있는 하루가 바로 오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울컥한 마음이 들면서 다시 힘이 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된다>, 정승익


<퓨처 셀프>에서 벤자민 하디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마치 20년 만에 처음 보는 것처럼 피비를 껴안았다. "우리 술래잡기할까?" 아이는 "응!" 대답하고는 까르르 웃으며 도망갔다. 나도 함께 웃으며 달려가 아이를 잡았다.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꼭 끌어안았다. '오, 이게 내 인생이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운이 좋았어?'
<퓨처 셀프>, 벤자민 하디


2025년 5월 26일, 오늘이 바로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날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을 쓰다 말고, 침실로 달려가 잠든 아내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똑같은 방향으로 누워서 잠든 아내와 아이를 봅니다. 아내는 제가 기억하는 60대의 아내보다 젊고 아름답습니다. 아이는 20대의 딸보다 귀엽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아침에 얼굴만 봐도 반가울 겁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겠네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열심히 살았지만, 20년 뒤의 저는 있을 곳이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도 열심히 벌고, 밖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주말에도 일을 했고,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우리 셋이 살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서울도 아니고 지방인데도 집값은 비쌉니다.


그래서 일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니 20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더 이상 27살의 딸은 저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동안 기회는 많았습니다.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강의 준비를 할 때마다 아이가 와서 같이 놀아달라고 합니다. "아빠는 바쁘니까, 엄마한테 가서 놀아달라고 해."

그때의 표정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딸은 아빠가 해준 게 뭐가 있냐고 합니다. 아이가 원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빠의 사랑을 원했을 뿐입니다. 20년 뒤의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살 수 있습니다. 시간도 많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기 싫어집니다. 그 집에서 살기 위해 20년의 인생을 바쳤는데, 아내와 아이가 없습니다. 아내와 아이의 인생에 제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문득 이런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서울대 의대에 보냅니다. 아이를 위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묻습니다. 비싼 학원도 보내주고, 사달라는 것은 다 사줬는데 말이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사소합니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죠. 맨날 눈만 뜨면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만 늘어놓는 부모님이 아닙니다. 눈을 뜨면 밝게 웃어주는 부모님, 따뜻하게 안아주는 부모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부모님을 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아이가 잘 살길 바라니까요.


미래의 나에게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30대 성인이다. 만약 아이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5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미래의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아이들에게 설교를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미래의 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무조건 지지할 거라 확신한다.
<퓨처 셀프>. 벤자민 하디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학원 숙제를 안 했다고 혼낼 부모님이 계실까요?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방을 어질렀다고 혼내는 부모님이 계실까요? 무턱대고 혼낼 게 아니라 왜 학원 숙제를 안 했는지, 왜 방이 지저분한지 물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사실 대부분 사소한 문제입니다. 적어도 20년 뒤의 우리가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행복해지길 원하십니다. 단, 그 행복은 부모님의 기준에서 행복입니다.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부모님의 눈에는 미흡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할 때, 하라는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내가 20년 뒤의 미래에서 왔다고 말이죠. 그때도 똑같이 하실 수 있는 이야기라면 하셔도 좋습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20년 뒤의 내가 생각하기에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상상만 해도 슬펐습니다. 전 오늘 하루를 2045년 5월 26일에서 20년 전으로 돌아온 하루로 살겠습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가족과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처럼 살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두근거립니다. 지금 자고 아이가 일어났을 때, 울면서 안아줄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 동안 보고 싶었다고. 아빠가 널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어리둥절한 아이를 안고 있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부모님, 아직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춘기가 온 우리 아이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30대가 된 아이는 연락도 자주 안 하고, 집에도 자주 안 옵니다. 10대의 우리 아이는 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행운이 있을까요?


잠시만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20년 뒤의 미래에서 온 자신을요. 눈을 뜨고 아이를 바라보세요. 20년 동안 그렇게 그립던 아이의 사춘기 시절입니다. 아이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된 부모님도 늦지 않았습니다. 20년 뒤의 미래에서 본 지금의 자녀도 충분히 어리니까요. 20년 뒤의 후회를 만회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20년 전으로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아이에게 20년 동안 담아온 사랑을 표현해 줄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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