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 마음 읽기
"엄마, 아빠가 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부모의 마음 한구석에는 서운함과 함께 여러 생각이 교차할 겁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내가 너에게 해준 게 얼만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날도 있겠죠. 이런 반응은 아이가 부모의 수고와 애정을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고민은 더욱 깊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일까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좋은 부모를 만났다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요?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일은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학원 버스를 놓칠세라 부리나케 데려다주면 "원래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투로 말하고, 용돈을 쥐여주면 "내 친구는 이것보다 더 받는데"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 부모는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세상의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고 싶은 것이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인데, 아이들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감사'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춘기 아이들과의 관계를 한 뼘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관계 개선의 아주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헌신을 아이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듯한 순간들, 분명 존재합니다. "매일같이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원하는 것을 사주는데..." 이런 노력들이 아이의 눈에는 정말 당연하게만 비치는 걸까요? 때로는 "내가 너무 모든 것을 다 해주어서 아이가 고마움을 배울 기회를 빼앗은 건 아닐까?"라는 자책 섞인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의 헌신과 사랑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니스 캐플런은 그녀의 저서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에서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을 값비싼 컴퓨터 캠프에 보냈습니다. 최소한의 안부 확인으로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전화를 해주길 바랐지만,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엄마 뭘 고마워해야 하는데? 애들을 캠프에 보내는 건 부모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야?”
또 다른 어머니는 운동선수인 딸을 대회에 참가시키기 위해 먼 도시까지 정기적으로 운전해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운전의 고됨보다 딸의 방어적인 태도가 그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난 애잖아. 운전을 못 하니까 당연히 엄마가 데려다줘야지.”
이런 이야기들은 씁쓸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노력을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그 “당연함” 속에 숨겨진 부모의 애정과 희생을 아이들이 깨닫게 된다면, 감사의 마음 또한 자연스레 싹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의 사랑에는 본디 조건이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라는 감정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부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으로 학원 앞에 나타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의 결과인지 아이들은 모릅니다.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실은 ‘누군가의 소중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아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된 직장 생활을 견디고, 밤늦도록 사업을 일구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 노력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처럼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향한 깊고 넓은 사랑 때문인데, 아이들은 왜 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정말 악의를 가졌거나, 은혜를 모르는 존재라서 그런 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0대들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거나 의존한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꺼린다고 합니다. 부모가 "내가 널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라며 생색을 내거나, 아이의 삶을 지나치게 통제하려 들면 아이는 오히려 반항심을 느끼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부모의 노력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라는 독립심과 부모에 대한 고마움 사이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른들과는 사뭇 다를 뿐입니다. 제니스 캐플런의 책에 등장하는 한 아이의 말이 이를 대변해 줍니다.
“아, 알겠다. 전 가끔 엄마가 당신의 채소밭에서 동물들이 채소를 먹어 치운다는 얘기로 40분 동안 수다를 떨 때 옆에서 들어줘요. 물론 별거 아니지만 단언컨대 전 그러는 걸 좋아하진 않거든요!”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 밀리의 서재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예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는 아이들이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려는 자연스러운 과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때로는 자신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고, 내 인생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한 번쯤은 품어봤을 법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사춘기의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피터 셀로비 전 예일대 총장은 졸업식 연설에서 감사와 의존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감사해야 할 필요성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 완전한 자기 의존이라는 신화를 거부하지 못한다면 삶의 진정한 행복을 아마 느끼지 못할 겁니다. 만일 우리가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그 도움에 감사하는 열린 마음을 키우지 못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은 멀다는 이야기죠."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 밀리의 서재
이 말은 곧, 우리가 서로 기대고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나에게 그만큼 잘해야 해!"라는 보상 심리보다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울지라도, 작은 감사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습관은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인 자아 형성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말을 이용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주변의 작은 일에 함께 친절을 베푸는 경험도 자연스럽게 감사를 배우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이에게 감사함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은 감사 일기를 꾸준히 작성해 보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은 편도체를 안정시키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아이가 부모의 노력을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안일의 일부를 책임지게 하거나, 부모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면 아이도 "아, 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감사함을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됩니다.
때로는 '희생'이라는 단어 대신 '공유'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세요. "엄마가 너를 위해 운전해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라고 말하기보다, "엄마는 너와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해"라고 표현해 보세요. 아이들은 일방적인 희생의 강조보다는 따뜻한 공감을 통해 관계의 가치를 더 깊이 배웁니다.
결국 감사는 한쪽의 요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느끼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노고를 알아주길 바라기 전에, 먼저 우리 삶 속의 작은 감사부터 발견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꾸준히 감사의 가치를 전달하고, 아이에게도 감사를 표현할 기회를 만들어주세요.
"네 덕분에 엄마가 오늘 하루 힘내서 일할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네가 설거지를 도와줘서 엄마가 편안하게 쉴 수 있었네, 진심으로 고맙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해서 이렇게 하는 거란다."
30년 경력을 가진 한 중학교 선생님은 사춘기 아들에게 "아이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라는 자기 암시를 매일 반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표현들이 하나하나 모여 아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감사의 씨앗을 심어줄 것입니다.
사춘기 아이는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때로는 자유를 속박하는 마음의 빚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오늘부터 '너를 위해서'라는 말 대신 '우리 함께'라는 말로 아이의 닫힌 마음의 문을 부드럽게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와 함께 '감사'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면, 분명 가정에 놀랍고도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감사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마음의 근력과도 같습니다.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모든 멋진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 또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