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는 건, 참 애매하다. 어른인 나도 때로는 "감사해야지"하고 생각만 할 뿐, 진심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하물며 아이들에게 "감사하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우리 교실에서는 아침마다 감사일기를 쓴다.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시작했는데,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니 놀라웠다. 생각보다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가족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아이의 글을 보며, 이 아이가 정말로 감사함을 아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이 아이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했다면? 부모님과 다퉜다면? 여전히 감사할 수 있을까?
밥 프록터는 이런 상황을 두고 "일시적인 감사"라고 표현했다.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감사는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순간 뜨끔했다. 나 역시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있었으니까.
결혼 전, 예식 한 달을 앞두고 신부가 사라진 적이 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예약까지 모두 마쳤는데 말이다. 연락도 안 되고, 위약금은 혼자 부담했다. 그때 다짐했다. 다시는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매일이 감사하다. 아내가 피곤해서 짜증을 내도, 바빠서 대화를 못 해도 감사하다. 존재 자체가 감사한 것이다. 이게 바로 무조건적인 감사가 아닐까?
딸에게도 자주 말한다. "아빠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제는 가끔 딸이 먼저 말한다.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서 행복해."
감사는 가르칠 수 있다. 억지로 쓰게 하는 감사일기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만 찾아도 된다. 글로 쓰기 싫으면 생각만 해도 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연애도 어려운데 결혼까지, 결혼도 어려운데 출산까지, 출산도 어려운데 육아까지. 모든 것이 기적의 연속이다.
사춘기라서 속 썩이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있어서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었고, 매일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그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해진다. 오늘 밤, 아이에게 말해보자.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마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