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해석을 진실이라고 믿는 마음이 강해지면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스쳐 지나갈 것들로 인생을 채우지 마라>, 고은미
교정 한편에서 아이들을 중재할 때면, 저는 종종 인간관계의 원형을 마주하곤 합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 셋이 보드게임을 하다 다툼이 벌어졌고, 그중 한 아이가 욕설과 함께 게임판을 발로 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에게 이유를 묻자, 다른 두 친구가 반칙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게임의 규칙을 어긴 것은 잘못입니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저지른 반칙은 분명 사과해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그 사실이 욕설과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상대의 잘못이 나의 잘못을 허락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을 그대로 터뜨리는 일은 용납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잠시 후 그 아이를 다시 불러 차분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지금 그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요.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정직합니다. 버럭 화를 내고 놀이판을 엎어버리는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아이는 없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고립의 섬으로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아이는 쉬는 시간이면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습니다.
가정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이해를 주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아직 어려서', '그럴 수 있지'라며 모두 수용해 준다면, 아이는 그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와 함께하면 누구나 즐거워하도록 행동해라. 그래야 모두 너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조던 피터슨의 말처럼, 관계의 핵심은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에 있습니다. 집에서 고쳐지지 않은 행동은 학교와 사회에서도 반복될 뿐이고, 그 끝은 외로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제 삶의 오랜 지침이 되어준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 신약성서 누가복음 6:31
관계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이 말은 단순하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작은 친절을 통해 이 황금률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사와 감사로 화답합니다. 세상은 이렇듯 작은 상호작용의 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즐겁게 게임을 하던 친구가 내게 욕을 하고 게임판을 걷어찼다면 어땠을까요? 그 순간의 분노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상대가 반칙을 했다면, 말로 지적하거나 놀이를 중단하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굳이 관계를 파괴하는 방식을 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은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정신적 사건일 뿐이다. 대부분의 생각은 사실이 아닌 나의 판단과 해석과 평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스쳐 지나갈 것들로 인생을 채우지 마라>, 고은미
'화가 난다'는 생각과 '화를 낸다'는 행동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의 해석이 정말 진실인지, 나의 행동이 과연 옳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상담이 끝난 후, 저는 복도에서 아이들을 다시 마주쳤습니다. 아까의 소란이 벌어졌던 보드게임은 사라지고, 아이들은 새로운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명 중 넷은 게임에 참여하고, 한 명은 옆에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왜 같이 안 하니?"라고 묻자, 그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지금 팀전이라서요, 다음 판에 하기로 했어요."
다음 판에 한 자리가 비었을 때, 아이들은 과연 누구를 찾게 될까요?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판을 엎는 친구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들을 존중하며 묵묵히 기다려주는 친구일까요? 답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교정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작은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부디 그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이해하고, 감정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하기에, 저는 오늘도 희망을 품고 그들을 지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