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성해나 작가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을 읽다가

by 정상가치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마음에 대한 표현에 가장 인색해집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쯤은 알아주겠지'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채 말입니다. 하지만 진심은 표현하지 않으면 결코 온전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표현에도 유통기한이 있는지, 제때 전하지 못한 마음은 시간이 흘러 후회라는 이름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곤 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입시 문제로 아버지와 크게 다툰 뒤 오랜 시간 대화가 끊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능 준비로 잔뜩 예민해져 있던 제게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또 다니냐"며 무심한 말을 툭 던지셨습니다. 그 순간 '아빠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사실은 '먼저 다가와 주길, 미안하다고 따뜻하게 말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아버지께서는 치매로 기억을 잃으셨고, 저는 그 시절 아버지의 진심을 영영 물어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 <두고 온 여름>에는 이처럼 엇갈리는 마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의 새어머니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면 언젠가 아이가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갸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내가 잘해야지, 내가 더 잘하면 되지. 노력하고 애쓰면 달라질 수 있다고 어머니는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기하도 자신을 받아줄 거라고, 마음을 열 수 있을 거라고.”
<두고 온 여름>, 성해나


많은 부모님이 꼭 닮은 생각을 합니다. 아이를 위해 참고 애쓰면, 나의 이 헌신을 언젠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그 노력에 서로를 향한 진솔한 '소통'이 빠져있다면 마음은 계속해서 평행선 위를 걷게 됩니다. 부모는 '이만큼 해주면 내 마음을 알겠지'라 생각하지만, 아이는 '나에게는 관심이 없구나'라고 오해하는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죠. 결국 소설 속 인물처럼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는 공허함만이 남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되려 너무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히 표현되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채워주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의 온기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다음에', '언젠가'라는 말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즘 힘든 일은 없니?”, “덕분에 항상 고마워.”, “그땐 내가 미안했어.” 와 같은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말들을 더 늦기 전에 건네야 합니다. '이만하면 내 마음을 알겠지'라는 기대 대신, '나는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어'라는 솔직한 고백이 필요한 때입니다. 마음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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