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의 대형마트, 계산대 앞은 언제나처럼 긴 줄로 북적입니다. 둘째는 설탕 가득한 과자를 사달라며 연신 보채고, 첫째는 그런 동생이 얄미운지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겁니다. 주변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장면, 낯설지 않으시죠. 바네사 라포인트의 저서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에 등장하는 상황을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많은 부모가 이와 비슷한 딜레마를 겪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어 상황을 급히 마무리 짓곤 하죠. 아이들의 칭얼거림과 다툼은 멈추겠지만, 그 누구의 마음도 편치 않은 불편한 침묵만이 남습니다.
오늘은 '훈육'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이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바네사 박사는 묻습니다.
이 방법들로 행동을 멈추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그 대가는 무엇인가?’이다. 식료품점에서 평온한 순간을 얻기 위해 우리가 희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네사 라포인트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트에서의 짧은 평온을 위해 아이와의 신뢰라는 더 큰 가치를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무겁고 아이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는, 결국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싸움이 되고 맙니다.
모든 아이가 공동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부모에게 신체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버림받는 것이다.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네사 라포인트
이 문장에서 제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동생과 오락실에 다녀온 날, 아버지께서는 얇은 옷차림의 저희 형제를 문밖으로 내쫓으셨습니다. 그때의 감정까지 생생하진 않지만, 그 이후로 오락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저 역시 '정서적으로 버림받는 것'의 두려움을 똑똑히 배웠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제게는 그런 저를 감싸 안아주시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엄격함에 맞서 자식들을 지켜내는 방패 같은 존재셨죠. 지금 돌이켜보면 두 분의 교육관이 얼마나 달랐는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버지는 악역을 자처하셨지만 결국 제 마음을 얻지는 못하셨고, 감정의 골만 깊어졌습니다.
아이의 신체적 욕구가 충족되는 것 다음으로 아동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바로 양육자가 자신의 감정을 돌봐줄 수 있을 거라고 아이가 느끼는가이다.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네사 라포인트
바네사 박사는 '단호하지만 친절하게, 연민을 담아' 아이에게 경계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아이와의 깊은 유대, 즉 애착 관계가 선행되어야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아이에게 화를 내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아닌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는 어른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욕구를 서툴게 표현할 뿐입니다. 어른의 잣대로는 미숙하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분명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집에 있는 간식을 먼저 먹고 새로 사자고 약속하고, 동생을 괴롭히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분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만 그 방식이 짜증 섞인 질책이 아닌, 사랑이 담긴 설명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불안해합니다.
이것이 바로 '애착 육아'의 핵심입니다. 아이를 교정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입니다. 부모와 사랑으로 단단히 연결된 아이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도 스스로를 변화시킬 힘을 가집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용납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선 분명한 훈육이 필요합니다. 핵심은 '사랑을 담아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겠지만, 사랑하는 아이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수고가 아닐까요.
양육자로서 우리의 역할을 생각하는 관점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양육자라는 역할에 부여된 권력을 이용해 아이를 바꾸거나, 고치거나,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순리대로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아이를 위해 싸워주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네사 라포인트
세상에 완벽한 육아법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애착'이라는 키워드가,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헤아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