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내가 누군가를 바꾸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사랑할 기회>, 박근호
누군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시도가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대상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일 때, 그 무력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어제 급식실에서 두 학생이 서로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명은 이전부터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였고, 다른 한 명 역시 상습적으로 부모님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던 아이였다. 수차례의 지도에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교사로서 맥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타인을 바꾸려는 노력은 종종 실망으로 귀결된다. 세상 누구도 내 마음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학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매일같이 펼쳐진다.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는 어린 딸아이에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스마트폰 좀 그만해라", "친구들이랑 그만 놀고 집에 일찍 들어와" 같은 말들이 아이에게는 그저 소음처럼 들릴 뿐이다. 사랑을 담아 건넨 조언이 아이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질 때, 부모의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 찬다.
이처럼 관계의 벽에 부딪혔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닌 '존중'이라는 태도다. 김종원 작가는 존중을 이렇게 정의했다.
존중은 상대방을 마치 나를 대하듯 소중한 마음으로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를 존경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모두를 존중할 수 있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김종원
우리는 아이조차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 나 자신을 대하듯 소중히, 그리고 동등하게. 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급식실 사건 이후, 나는 두 학생을 푹신한 의자에 나란히 앉혔다.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기에, 존중의 태도를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학생에게 왜 자꾸 친구와 부딪치는지 묻자, 친구가 내뱉는 욕설이 듣기 싫다고 했다. 사실 그 아이도 자신의 거친 말 때문에 친구들이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욕을 하던 친구 역시 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 노력을 알아주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두 아이의 눈을 맞추며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자, 교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진심 어린 존중은 상대에게 가닿아, 그들 역시 존중으로 화답하게 만든다. 부모가 아이를 존중할 때, 아이 또한 부모를 존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존중은 스스로 자신을 아름다운 세계로 이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발행 가능한 티켓과도 같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김종원
결국 존중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배우자를, 자녀를, 동료를 존중하는 행위는 곧 우리 자신을 더 나은 세계로 이끄는 첫걸음이다. 오늘, 마음속에 '존중'이라는 티켓 한 장을 발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작은 실천이 메마른 관계에 단비처럼 스며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