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것에서 벗어날 용기

by 정상가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문장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는 물려받은 농장과 집, 모든 것들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농장과 집, 헛간, 가축, 농기구를 물려받아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 젊은이가 많다. 이런 것들은 얻기보다 거기서 벗어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석희 옮김


남들이 보기엔 축복일 텐데, 어째서 불행하다고 했을까요. 모든 것이 보장된 삶이 오히려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될 수 있다는 역설. 문득 드라마 <당신의 맛> 속 '춘승이'가 떠올랐습니다. 유명 국밥집을 물려받아야 하는 운명 앞에서 "나는 콩나물국밥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야!"라며 절규하던 그의 모습에서 소로우의 문장이 비로소 선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원치 않는 길 위에 이미 서 있다는 감각,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생의 경로가 정해져 버린 듯한 막막함이었을 겁니다.


제 동생은 의사입니다. 의대 시절, 부모님이 의사인 동기들이 유난히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 그 빛나는 타이틀 뒤편에,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또 다른 '춘승이'가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다른 재능을 가졌을지 모를 아이가, 단지 부모의 기대라는 틀 안에서 10대의 전부를 바쳐야 했다면 그것을 온전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왜 그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가? 그들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이 모든 짐을 밀면서 한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석희 옮김


소로우는 '기대'라는 이름의 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거, 저의 어머니는 로맹 가리의 어머니처럼 제게 "너는 대법원장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 기대는 자부심이 아닌 무거운 부담이었습니다. 엇나갔던 사춘기는 어쩌면 그 무게에 대한 서투른 저항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리석게도, 내 인생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준 채 방황했던 시간이었죠.


이제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저는 다짐합니다. 내 아이에게 어떤 기대의 짐도 지우지 않겠다고. 가수 이적이나 김주환 교수가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기에 오히려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진정한 성장은 강요가 아닌 자발성에서 피어납니다.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마음속 울림을 따라갈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아이의 가슴을 기대가 아닌 신뢰와 사랑으로 채워주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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