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벌은 아무 소용없어요"

한 아이가 내게 가르쳐 준 것

by 정상가치

사춘기 시절, 세상의 중심은 친구였다. 어른들의 세상은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고, 친구의 말 한마디가 그날의 기분을, 나아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했다. 교직에 몸담으며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이토록 간단한 진리를 종종 잊곤 한다. 한 학생을 통해 나는 다시금 그 시절의 강렬한 우정의 무게를 실감했다.


매일같이 지각을 하던 A라는 학생이 있었다. 부모님과 깊은 상담 끝에 여러 이유를 들었지만,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단 하나, 아이가 학교에 늦는 '이유'였다. 아이에게 학교는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덕에, A의 집은 방과 후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학교에 굳이 일찍 가지 않아도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보장된 셈이었다. 아이 스스로 등교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이 지각은 영원히 반복될 운명처럼 보였다.


"아이가 지각한 날엔 벌로 학습지를 풀게 하면 어떨까요?"


어머님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에게 그런 벌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어느 날, 기적처럼 A가 제시간에 등교했다. 나는 아이를 칭찬한 뒤, 쉬는 시간에 조용히 불렀다. 그때 A의 집에 매일같이 드나들던 가장 친한 친구도 함께였다. 부모님과의 상담 내용을 전하자, A는 학습지 이야기에 코웃음을 쳤다.


"학습지요? 그냥 빨리 풀면 되죠."


역시나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A의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A가 지각하는 날에는, 그를 위해 집에 놀러 가지 말아 달라고. 그것이 A에게는 백 장의 학습지보다 더 무서운 벌이 될 것이라고. 순간 A의 얼굴에 스친 당혹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그 벌을 '보상'으로 바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각하지 않은 날, 친구와 함께 집에서 놀 수 있다는 약속처럼. 부정의 힘보다는 긍정의 힘이 언제나 더 강력한 법이니까.


이 경험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부모의 말이 더는 절대적이지 않은 시기, 아이의 세상은 친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가 변하길 바란다면, 그 아이의 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친구들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부모의 시선으로 지켜봐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의 친구에게 저자세로 부탁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아이의 관계에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들은 아직 어떤 친구가 스쳐 갈 인연이고, 어떤 친구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인지 구별할 지혜가 없다. 사춘기라는 격랑을 먼저 건너온 부모의 경험과 지혜가 아이에겐 등대가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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