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미루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공부' 앞에서 부모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기 마련이죠. 방학은 부족함을 채울 절호의 기회이지만, 학기 중 소진된 에너지로 인해 아이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면 걱정이 앞섭니다. "의욕이 없어서 못 하겠다"는 아이의 말을 그저 핑계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저 역시 치열했던 수험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목표 대학에 가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고, 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동력은 쉽게 타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의욕이 다시 생길 때까지' 잠시 책을 덮는 쪽을 택하곤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행동의 선결 조건이 의욕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깨달은 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행동하지 않았기에 의욕이 샘솟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강한 동기부여가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저 작은 행동 하나가 잠자고 있던 의욕을 깨우는 열쇠가 됩니다.
여기에는 ‘작동흥분이론 (일단 일을 시작하면 뇌의 측좌핵 부위가 흥분하기 시작해서 하기 싫던 일도 몰두하게 되는 정신 현상)’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행동하면 의욕이 생기는 것을 뜻하는 심리학 전문 용어다.
<설명의 기술>, 이누쓰카 마사시 지음 / 홍성민 옮김
이 이론은 우리가 가진 통념의 허를 찌릅니다. 의욕은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대상이며, 그 재료는 바로 '행동'입니다. 하기 싫던 일도 일단 시작하면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몰입의 상태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놀라운 정신 현상은 비단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뤄왔던 운동, 서먹했던 관계의 회복, 새로운 도전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원리를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목표 대신, '시작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춰주는 것입니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라면, 문제 풀이를 강요하는 대신 매일 아침 수학책을 책상 위에 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수업 시간, 제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자, 교과서 14쪽을 펴세요"입니다.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마지못해 책을 폅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행위가 변화의 시작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교과서, 설명을 듣는 친구들의 모습은 딴짓을 하던 아이의 신경을 조금씩 수업으로 잡아당깁니다. '무슨 내용이지?' 하는 작은 호기심이 어느새 45분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기적을 저는 매일 목격합니다.
결국 핵심은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습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이 뇌의 스위치를 켜고, 멈춰 있던 의욕의 톱니바퀴를 다시 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주 조금만 한다고 시작했던 아이가 어느새 깊이 몰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에게 큰 기쁨과 놀라움이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비밀을 활용하여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성장의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