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by 정상가치

어린 시절 우리가 읽었던 동화는 대부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공주와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고, 용감한 주인공은 목표했던 바를 반드시 이루어 냈죠.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모두가 꿈꾸던 '브레멘'에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문턱에서 좌절하고,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겪으며 길을 잃기도 합니다. 루리 작가의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바로 그 길 위에서 시작되는 어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상의 끝에 내몰린 네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택시 회사에서 해고된 당나귀, 음식점이 이전하며 버려진 개, 험악한 인상 때문에 편의점에서 쫓겨난 고양이, 그리고 길거리에서 간신히 두부를 파는 닭. 이들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낼 도둑의 집에서 각자의 아픈 상처를 꺼내놓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읽으면서 상상한 등장인물의 심경입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나오면 세상이 끝날 거라 생각한다. 더 이상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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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다고 해고된 당나귀. 아직 일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만은 청춘. 사람들은 내 얼굴의 주름살과 흰머리만 의식한다.


시간이 지나도 알맹이는 그대로인데. 이렇게 믿는 건 나뿐일까.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지하철아, 너는 목적지가 있구나.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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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간다고 해서 미안하다는 주인. 같이 가자고 한마디 운 만 띄워도 어디든 따라갈 텐데. 나만 친하다고 느꼈을까.


이제야 가족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그때의 환희가 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쉽게 정을 주지 않았어야 했다고 자책해도 이미 늦었네. 나만 순진했고. 바보였다.


그런 나를 비웃는 눈물이 흐른다. 닦을 생각도 없이 하염없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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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눈이 멋있다고 했다. 편의점에든 강도를 쫓느라 생긴 영광의 상처라고 해줬다. 내 상처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네 손길이 좋았다.


그런 네가 내게 "그런 얼굴"이라고 말한다. 한때 멋있다고 말했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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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다. 2천 원에 한 모. 모질게 살아남은 내게 유일한 벗, 두부.


이런 아픔을 겪는 내게 희망을 꿈꿀 기회가 있을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너희가 고맙다. 나를 필요하다고 해줘서 고맙다.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혼자서 궁상맞게 보도블록 위에서 두부를 놓고 앉지 않아도 되니까.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난 어느 날 오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무언가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목적지를 잃고 헤매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어제의 실패를 딛고 오늘의 작은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브레멘에 가지 못한 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희망이 아닐까요.


당신이 꿈꾸던 브레멘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당신 곁에는 이미 새로운 시작을 함께할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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