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연습

by 정상가치

소중한 이에게 나도 모르게 날을 세웠던 순간이 있나요? 사랑해서 그런 거라며, 너를 위한 것이라며 건넸던 말들이 오히려 관계의 온도를 차갑게 식혔던 경험은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특히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더 완벽한 기준을 들이밀며 상처를 주곤 했습니다.


제 딸아이는 식사 시간마다 책을 읽습니다. 이제 막 세상의 이야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에게 식탁은 또 다른 도서관이 됩니다. 어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죠. 밥은 씹는 둥 마는 둥, 이야기에 빠진 아이를 보며 아내는 속이 탑니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식사 시간은 고된 노동이 되고, 아내의 지친 몸은 작은 짜증들을 뱉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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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두자' - 멜 로빈스, <렛뎀 이론> 41쪽


이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저 역시 어떻게든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명료했습니다. "심심해서요." 어른에게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마쳐야 할 과업이지만, 아이에게는 즐거운 놀이의 연장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하려 합니다. 모든 아이에게 통용되는 완벽한 육아법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 틀에 내 아이를 맞추려 애씁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우주를 가진 특별한 존재입니다. 내 아이에게는 세상의 모든 육아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플 땐 누구보다 빠르게 밥을 먹습니다. 스스로의 필요를 따를 뿐이죠.


물론 부모의 역할과 규칙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성장을 억누르고 관계를 해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규율을 어기는 일이 아니라면, 조금은 다른 속도를 인정해주는 건 어떨까요. 아이가 겪을 시행착오를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부모의 진짜 역할일지 모릅니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 각자의 삶을 살게 되면, 이렇게 셋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은 그리운 풍경이 될 겁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잔소리와 어색한 침묵으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어지러운 방, 가끔의 늦잠, 미뤄둔 숙제. 그런 것들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지는 말자고 다짐합니다.


내버려두는 것은 방임이 아닙니다. 상대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가장 깊은 신뢰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장점 대신 하나의 단점만을 붙들고 씨름하곤 합니다. 새하얀 도화지에 찍힌 작은 점처럼 말이죠. 이제 그 검은 점에서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의 새하얀 가능성을 바라봐 주려 합니다. 불완전함을 사랑하고,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도록 놓아주는 것. 그것이 제가 찾은 가장 어려운 사랑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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