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릿>,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한국문화사,
찰스 디킨스의 길고 긴 소설 <작은 도릿>에는 인간의 심리, 특히 자기기만에 관한 설명이 대단히 탁월했는데,
한편 안전하고 이익 높은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의 열망도 그려져 있다.
<작은 도릿>은 예전에 읽었던 에밀 졸라의 소설 <돈> (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문학동네) 보다 이른 시기에 쓰인 소설이다.
에밀 졸라의 <돈>이 생산성 있는 근거가 희박한 데도 부풀리고 선동해서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주체와 그 행위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작은 도릿>에는 사람들이 불로소득으로 향하는 집단 심리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이 소설들에서
영끌로 상징되는 지난 몇 년의 부동산을 향한 열망과,
최근의 주가 조작 사태 이면을 이해할 수 있다.
두 소설 모두 당시에 실재했던 투기 열풍과 뒤이은 파산 사태가 그 배경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 도릿>에 관한 이전 글에서 상류사회의 허세와 무능력, 무위도식을 뒷받침하는 후견인으로서 일만 하는 머들 씨를 소개한 바 있다.
부인으로 보석을 걸어둘 만한 상류층의 가슴을 얻은 대단한 머들 씨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알려진 사람이었다.
머들이라는 이름이 모든 이의 입에 올랐고 모든 이의 귀에 전해졌다. 머들 님과 같은 인물은 현재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거리는 식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세상에 나타났던 인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았다. (3권 262쪽)
그가 주최하는 만찬 자리에는 사회의 권력층이 모여들고,
상류층의 이익에 크게 기여한 그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하자는 논의가 진행된다.
내용은 모르나 대단한 인물 머들 씨에게 투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풍문이 떠돌고,
그래서 부자도, 가난뱅이도, 성실한 일꾼도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머들에게 투자한다.
착실하고 책임감 있는 깐깐한 팽스도 열렬한 선의로 클레넘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이미 검토했어요. 이리저리 계산하고 따져보았는데, 안전하고 진짜더라고요.” 그 얘기까지 다 해서 마음의 짐을 덜은 팽스 씨는 동방산 담뱃대 한 모금을 자신의 폐가 허용하는 한 길게 빨고 나서 클레넘을 현명하고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담배를 들이마시고 내뿜는 것은 계속했다. 그럴 때마다 팽스 씨는 자신이 감염된 위험한 전염병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 질병을 퍼뜨리는 방법이고 그 질병이 퍼지는 교묘한 통로인 것이다.
팽스 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병에 감염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널리 퍼진 그 질병을 누구에게서 옮겨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욕체적 질병이 처음에는 사람들의 사악함 속에서 생겨나고 그다음에는 무지 속에서 확산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러한 전염병은 무지하지도 사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전염되는 법이다. 팽스 씨 자신은 그 질병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에게서 옮겨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으나, 클레넘에게는 그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가 퍼뜨리는 질병은 더욱더 전염성이 강한 것이 되었다. (3권 282, 283, 284쪽)
팽스 씨는 정말 선의로 정직하고 성실한 클레넘에게 투자를 권한 것이었다.
머들 씨의 부에 편승해서,
고지식하게 꾸려가는 클레넘의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한 마디만 더하고요, 클레넘 씨.” 팽스가 응수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밤에는 그만합시다. 왜 모든 이익을 탐욕가들, 악당들, 그리고 사기꾼들이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죠? 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이익을 내 주인을 포함한 그런 인간들이 차지하게 내버려 두는 거냐고요? 당신은 지금까지 늘 그렇게 행동했어요. 당신이라고 말할 때 당신 같은 사람들 전부를 말하는 거예요. 당신네가 그렇다는 건 본인이 알겠죠. 글쎄요. 나는 내 평생 매일 그 꼴을 보았고, 다른 건 본 적이 없어요, 그걸 지켜보는 것이 내 일이었던 거죠. 그래서 내가 하는 얘기는,” 팽스가 강조했다. “끼어들어서 차지하라는 겁니다!” (287, 288쪽)
저명한 위인이자 위대한 국가적 장식품,
상류사회에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공헌을 훌륭하게 수행한 사람 (4권 116쪽)인 머들 씨는,
시중의 모든 자금을 빨아들인 뒤,
사회에 수많은 파산과 고통을 만들어내고는 혼자 자세상으로 가버렸다.
머들 씨는 욕망의 얼굴 마담으로서 그가 책임질 부분이 있지만.
머들 씨로부터 가장 크게 이익을 본 권력층의 책임과,
내용도 모르면서 무조건 머들에 동조한 모든 사람들도 각자의 마땅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작가는 보는 것 같다.
머들 씨를 말처럼 몰아대며 기생한 권력은 머들의 파산 뒤에도 굳건하게 세상에 군림한다.
성공 열망에 불타는 또 다른 머들을 찾아내겠지.
... 욕조바닥에 놓여 있는 썩은 고기 위에 멈췄다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선물을 가져오는 현인들의 추종을 받는 새로운 별자리였던 그가- 그때까지 교수대를 용케 벗어났던 자 중 최대의 위조꾼이요 최대의 도둑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4권 151쪽)
머들 부인은 비천한 야만인의(머들 씨는 작은 욕조에서 발견되는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비천한 야만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간계에 희생되었고, 훌륭한 교양을 갖춘 상류사회의 여성으로서 그녀가 속한 계급에 의해 그 계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옹호되어야 했다. 그녀는 고인이 된 흉악한 사람에 대해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한층 더 격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깨닫게 해서 그러한 신의에 대해 신의로써 답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녀는 용광로에서 현명한 여자처럼 대단히 잘 빠져나왔다.(4권 324쪽)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 게임은 뜬구름이다.
투자에 투자를 받아 소문과 욕심으로 번져나가는 장난은 언젠가 끝이 나지.
우리 모두 쉽게 걸리는 전염병.
이득을 보는 자는 따로 있고,
대부분은 그 이득에 말려들 뿐이다.
정신적 전염병이 최소한 육체적 전염병만큼이나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 그러한 질병은 역병만큼 유해하고 급속하게 확산된다는 것, 전염이 일단 진행되면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가장 온전한 건강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배하며 절대 퍼질 것 같지 않은 체질에서도 퍼진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대기를 호흡한다는 것만큼이나 경험으로 확실히 증명된 사실이다. 그 연약함과 사악함 때문에 이와 같은 악성질병을 불러온 감염자를, 독이 퍼지기 전에 바로 붙잡아서 확실히 가둘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질식시켜 죽이진 않는다 하더라도) 말로 다할 수 없는 축복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3권 262쪽)
코로나19로 팬데믹의 시기를 겪어내면서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정신적 전염병에 걸려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인간사의 한 부분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