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가는 길

by 기차는 달려가고

가을, 도쿄에 있었다.

30년 전쯤의 일이다.

나중에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해지던 기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래도 일본 사회에 여전히 활력이 남아있던 시기.

알록달록 하라주쿠는 경쾌하고 발랄했으며.

내가 좋아하던 오모테산도 거리의 무성한 가로수들은 이파리를 떨구기 시작했었다.


10월 마지막 밤,

도쿄 시내 곳곳에는 핼러윈 분장을 한 외국인들이 출동해서

행인들의 시선을 끌며 자신들의 요란한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밤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로 떠났다.



날이 추워지고 있었다.

안에 누빔을 댄 코트를 입고 모자를 썼다.

여행용 헝겊 가방을 옆으로 메었다.

기차는 밤 9시에 도쿄역을 출발했다.

밤새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겠지.

객차에는 승객이 몇 명뿐이었다.

창밖에는 캄캄한 어둠.

그 어둠을 배경으로 유리창에는 객차 안의 썰렁한 풍경이 고스란히 반사되었다.


나는 워크맨에 가요 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을 꽂았다.

발라드, 젊은 가수들.

한국 가요가 폭발적으로 꽃 피우던 때.

이별의 고통과 애타는 마음, 막연한 그리움으로 한껏 감상적이었던 노래들은,

왠지 모를 슬픔의 심연으로 나를 끌어들여서.

의자에 기대 불편하게 잠이 들 때까지 테이프를 되풀이, 되풀이 틀었다.



기차는 혼슈 북쪽 끝에서 멈추었다.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해저터널을 지나 홋카이도에 들어설 참이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역에 내렸다.

작은 동네, 크지 않은 기차역 플랫폼에서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는데.

기찻길 건너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 가파른 산등성이 뒤에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때마침 바람이 세게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내가 한 손으로 바람에 벗겨지려는 모자를 붙들었을 때,

모자와 코트 자락 사이 뒷덜미에 눈송이 하나가 닿았다.

단지 눈송이 하나가 목덜미에 닿아 약간의 차가움을 남기고 사라졌을 뿐인데,

내 눈에서는 또르르 눈물이 흘러버렸다.



먼저 하코다테에 내렸다.

10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거리에서 눈보라를 만났다.

내가 서있던 교차로는 순식간에 풍경을 감추고,

동시에 사람도, 길도, 자동차도 백색의 커튼 뒤로 사라져 버렸다.

눈보라를 뚫고 간신히 모퉁이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온통 북극 같은 백색의 거리에서 나는 갑자기 따듯한 총천연색의 세계로 들어온 듯.

주물 난로에서는 붉은빛을 뿜으며 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눈 축제를 준비하고 있던 삿포로는 스키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한산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호텔에는 영어를 말하는 여직원이 한 사람 있었다.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주던 여직원은 나의 여행에 관심을 보이면서 아득한 표정이 되더니,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홋카이도에서는 이상한 허기가 밀려왔다.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세 개 주문했다.

연어알 덮밥, 오징어 요리, 하나는 또 뭐였더라?

다 먹지도 못하면서 배는 부른데 허기는 여전한,

기이한 상태.


내 나이 서른 즈음이었고,

마음에는 우울함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내가 무얼 원하고, 무얼 취해야 할지.

현실은 무엇이고, 내 인생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갈팡질팡이었는데.

여행은 아무 답을 주지 않았고,

춥고 황량한 겨울 풍경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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