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없는 월요일, 19편, 전자레인지의 계절
고기 없는 월요일
며칠 전 종일 집에 있다가,
이제는 더위가 좀 가셨겠지?, 하면서
저녁 먹고 나서 걷기도 할 겸 빵이나 사 오려고 밖에 나갔다.
걸음이 빨랐던지, 후, 고새 더위를 먹고 말았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한 길,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쪼그리고 앉은 여자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머뭇머뭇하던 젊은 커플아,
혹시 도와주려 했었다면 고마워요.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면서 어지러웠답니다.
참으로 자비 없는 폭염인데,
그래봤자 8월 중순이면 한풀 꺾이겠지, 하는 거만한 마음으로 창 밖의 작열하는 태양을 구경 중이나...
음식 만들겠다고 가스불 켜는 건 두려운 기온이라서
입맛도 없겠다,
소화도 잘 안 되겠다,
열기가 덜한 전자레인지와 인덕션만 살짝살짝 돌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다.
아침에는 채소를 익혀먹었다.
당근 스틱, 자잘한 새송이버섯, 단호박과 브로콜리 조각을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2분 돌리다,
포크로 콕콕 찍은(껍질 폭발하지 말라고) 방울토마토 몇 알 넣어 1분 더 돌렸다.
촉촉하면서 먹기 좋은 식감에 각 채소의 맛이 살아있어서
드레싱이나 양념장 없이 그냥 먹었네.
채소 다 먹고 나서 홍차 마시며 올리브유 뿌린 잡곡빵 반 쪽을 더 먹었음.
점심은 과일과 얻어온 떡을 먹기로 한다.
단단한 천도복숭아 깎아서 접시 한편에 두고요.
냉동실 애플망고도 몇 조각 꺼내두고요.
약식 반 쪽과 짧게 자른 가래떡 한쪽은 전자레인지에 잠깐 데웠네요.
나의 기호보다 훨씬 달달한 약식은 두유를 쪽쪽 빨면서 먹고,
가래떡은 심심하니까 냉장고에서 잔멸치 볶음을 꺼내 같이 먹었음.
과일까지 싹싹 먹어치우고 설거지하고 쉬었다가 어묵 하나 꺼내 끓는 물에 데쳐 먹었지요.
그런대로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낮에 먹은 음식이 배 안에 그득해 저녁밥이 늦었다.
냉장고에 시들어가는 애호박이 있으니 오늘은 꼭 구출해야 한다.
계란을 쓰지 않는 애호박 부침개 만들려고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는데,
음, 그냥 내 맘대로 하기로.
나는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는 쓰지 않기에 평소 하던 대로 통밀가루를 꺼낸다.
양파 조금, 애호박 반 개 채쳐서 소금 조금 뿌려 절이고.
시들한 깻잎 두 장 채치고요.
매운 고추 하나 잘게 다집니다.
애호박과 양파는 절이는 동안 물기가 흥건해졌으니,
그 위에 채친 깻잎, 다진 고추, 통밀가루 조금 넣어 (물은 넣지 않고) 잘 섞고요.
달구어 기름 넣은 팬에 두 숟가락 정도씩 반죽을 두어 작은 부침개를 부칩니다.
금방 지져낸 부침개는 초간장을 찍어 먹었는데
사각사각하고,
살짝 매콤한 맛에 깻잎의 독특한 향까지 더해진 달큼한 애호박 부침개는 더운 여름날에 잘 맞았다.
먹고 남은 건 식혀서 냉장고 행.
심심할 때 꺼내 데워먹어야지.
내일은 꼭 밥과 국물과 반찬을 해 먹어야겠다.
밥과 반찬을 먹지 않은 날은 이것저것 집어먹어도 뭔가 허전함.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움직이면 덥다.
더구나 불에 익히는 음식을 할라치면...
이 더위에
불가마 같은 식당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 만드시는 분들,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