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마다 귤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물가 때문에 과일 값이 치솟기만 했는데.
추석이 지나면서 과일 값이 떨어지더니 드디어 귤이 흔해지기 시작했다.
네 계절 내내 귤을 살 수는 있지만
다른 계절에 나오는 귤은 가격이 적지 않은데.
드디어!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보급형 귤의 계절이 온 것이다.
환영합니다.
어릴 적 누구나 따뜻한 방바닥에 길게 누워서
손가락이 노랗게 되도록 쟁반에 수북하게 담긴 귤을 홀랑 홀랑 까먹던 겨울방학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옆에는 수십 권 시리즈 만화책을 쌓아놓고 교과서야 저리 가라, 하면서 말이지.
겨울철 한정 국민 과일 귤.
깎을 필요도, 자를 이유도 없이 껍질만 까면 향긋한 과즙이 톡톡 터지는 새콤한 귤.
오랫동안 우리에게 겨울은 귤이 흔한 계절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옆으로 자른 귤을 후식으로 내주었지.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좁은 복도로 밀고 다니던 간식 수레에는 망에 담긴 주황색 귤 주머니가 쌓여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돈 주고 귤을 사 먹지 않는다는데,
외지 사람인 나는 관광지 편의점에서 그 망에 든 귤을 사서 홀랑 홀랑 까먹으며 제주도를 구경했다네.
제주도 겨울 여행에서 수확기의 감귤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울컥했던 기분을 기억한다.
커다란 가슴을 천형인 듯 간신히 버티던 젖소와 마주쳤을 때와 같은 충격이랄까.
사람 손이 닿도록 키가 작게 키워진 초록색 감귤나무는,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주황색 귤을 다닥다닥 달고 있었다.
아,
그 무거운 운명을 견디는 나무를 어루만져야 할 것 같은 죄송한 마음.
제주도 분들의 노고와 키 작은 나무들의 고통으로 우리는 귤을 흔하게, 쉽게 먹을 수 있는 거였구나.
가게마다 곱디고운 빛깔의 무더기로 쌓여 있는 귤을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던가.
귤 하나하나,
씨앗부터 시작해 싹이 트고 줄기가 굵어지고 나무로 자라 결실을 맺기까지.
생명은 온 힘을 다했겠지.
귤을 보살핀 농부들과 내 손에 이르기까지 귤과 함께 한모든 이의 수고를 떠올린다.
톡톡, 껍질을 까면 대기로 퍼지는 향기로운 과즙과
입안에 닿는 새콤달콤한 맛을 전해준 모든 이들의 진실한 삶을 떠올리며.
이번 겨울도 귤 까먹으면서 잘 이겨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