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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07. 2024

잃은 뒤에 알게 되는 것들

끄적끄적

손가락을 베었다.

왼손 엄지손가락 끄트머리.

내 몸은 끔찍이 아껴서 매사에 장갑, 어떤 때는 두 개씩도 겹쳐 쓰는 내가,

그만 맨손으로 깨진 타일조각을 집다가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아야!



오른손이 아니라 다행이다, 하면서.

틈틈이 식염수로 씻어내고 빨간약으로 소독하고 메디폼 리퀴드를 두껍게 발라 상처를 보호하는데.

다쳐보니 왼손 쓸 일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겠다.

세수하고 머리 감고 샤워할 때는 오른손만으로는 안 된다.

왼손이 협력해야 어푸어푸 씻기가 수월하다.

얼굴에 기초화장품을 바를 때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토닥토닥했다.

어색해라.

부엌 일도 그렇다.

내가 음식 만들 때는 어지간하면 맨손으로 하는 사람이라

왼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채소를 다듬고 씻으려니 영 불편하다.

할 수 없지.

며칠만 고생하자.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결핍이 생겼을 때 비로소 그 쓰임과 수고로움을 깨닫고 미안해지는 경우가 있다.

신체의 어느 부분도 다 기능과 역할이 있어서 약간의 장애만 생겨도 일상생활이 불편해진다.



반면에 의외로 없어졌는데괜찮네? 할 때도 있다.

없으면, 안 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안달복달하는데,

막상 없어져도 살아보면 엉, 괜찮잖아? 하는 경우.

돈, 집, 학벌 뭐 그런 거.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옛날에는 결혼 안 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만,

요즘에는 평생 결혼 안 하고 잘 사는 사람이 많고.

아이 낳지 않으면 큰일인 줄 알았지만 요새는 아이 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도 많다.


내 인생의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하다, 는 생각을 다시 한다.

사소해 보여도 내게는 귀중한 것이 있고,

남들이 다 쫓아가는 가치라도 내게는 없어도 그만인 것이 있다.

꿋꿋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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