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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담소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옷이든 머리든 마음에 들면 혹시 상대방의 실수가 생기더라도 쭈욱 다니는 사람이다.

어지간하면 옮기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다닌 미용실은 머리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는데,

가격이 적당하고 미용사가 열심이었다.

특히 머리 감는 의자가 편했다.

목과 어깨가 좋지 않은 내게 중요한 장점.


그런데 미용사가 손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쉬게 됐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쉰다더니 그 뒤에도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닐 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방황 중인데,

서비스 비용이 엄청 오른 데다가 딱히 마음에 끌리는 곳이 안 보인다.

지금 다니는 곳은 나이 드신 미용사 분이 혼자 운영하는 곳으로 착한 가격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미용사 분이 성당에 열심인 분인데 참 선량하고 일에 성의가 있으시다.

수십 년 단골손님들만 오는 곳이라서 가족이 모두 함께 다닌다거나,

같은 성당 신도들로 손님들끼리 서로 잘 안다거나.

그래서 머리가 끝나도 가지 않고 둘러앉아 떡을 나눠드시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빗자루 들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운다거나.

세탁기에서 한 무더기 수건을 꺼내 건조대에 널거나, 하여 바쁜 미용사를 자발적으로 돕는다.


나는 염색과 커트만 하는데 커트 솜씨가 좀 아니어서 늘 다른 미용실을 기웃거리며 괜찮은 데 없나, 찾는다.

하지만 마땅해 보이는 곳은 눈에 안 띄고.

새로 가봐도 솜씨가 아니면 어쩌나,

어차피 질끈 묶고 모자 쓸 머리 대충 하지 뭐, 포기하고는 오늘로 세 번째 이 미용실을 찾았다.



오늘도 머리가 끝난 손님,

지나다 들린 손님들이 주르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시는 중이었다.

나는 모르는 분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게 좋다.

미용사 분은 어버이날 기념으로 자식들이 보내준 해외여행을 남편과 함께 다녀오셨다고.

성격이 온순한 미용사분은 평소 남편을 꽤 위하는 눈치였는데.

그 남편 분은 부인과 성격이 정반대로 버럭에 안달복달이신지,

여행 가서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며 부인을 들들 볶았다고 한탄하시네.

이후 어버이날 자식들이 뭘 해줬는지 손님들 사이에 자랑 배틀이 이어졌는데.

만장일치 승자는,

직장 다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저녁에 오시라 해서 직접 만든 저녁식사를 대접했다고,

며느리 자랑을 외치신 분이었다.

다들 그 며느리를 칭찬하면서 요새 누가 시어머니 불러 집에서 직접 밥 해주냐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나는 이사 간 아들 집이 어딘지도 몰라,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앞으로는 이도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어버이날이 국가적인 행사 같다.

노인들이 많으니 그렇겠지.

지금 노인 세대는 고생을 많이 한 분들이라,

안쓰러운 마음과 말이 안 통한다는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흠.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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