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살아온 우리 선조들도 굴곡진 시대에 고생스럽게 살다 갔지만.
그래도 중국에서 유럽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살아간 사람들이 겪었던 이합집산의 수많은 전쟁의 광풍에서는 비켜나 있었다.
대륙의 끄트머리, 작은 반도라는 지리적인 이점이랄까.
비교적 오랫동안 단일 왕조국가가 유지되었고.
권력의 교체기에도 수많은 백성들이 죽는 대규모 난이나 전쟁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이 권력이 밀려오고 저 세력이 부흥하여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밀려 이동하기도 했고.
권력자의 이해관계와 정복욕의 도구가 되어 인간이
전쟁터에서 일회용으로 쓰이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지금도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팔레스타인 침공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지 않은가.
옛날에는 이런 일들이 다반사였겠지.
서구 역사를 보면 거의가 전쟁의 연속이다.
국내에서, 해외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다.
문화와 경제, 정치가 언급된 지는 달랑 수백 년.
튀르키예에서는 역사 시간에 '우리 조상'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를 배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임을 의심하지 않지만.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침략과 정복이 반복되었기에,
지배 권력이 바뀌고 사람들 또한 집단으로 이동하였으므로.
천 년, 이 천 년 전의 직계 조상이 어디서 왔을지를 확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과 같은 국민국가들이 확립되고 나라 간 경계선이 확정된 지는 백 년이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까?
지구의 일부분, 즉 산업화된 일부 국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1960년대부터 20세기말까지가 일반사람들이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절을 살았다, 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전에는 평민들이 궁핍해서 지금처럼 소비하는 생활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세대는 기후이변이나 경제 상황 등으로 삶이 지금보다 고단해질 거라는 예상이었다.
역사책을 읽다가,
도대체 왜!
권력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전쟁을 걸핏하면 벌였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미친 권력자의 허무맹랑한 욕심으로 수없는 사람들의 삶이 말굽에 짓밟혀 진창에 나뒹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썼다.
이반이 죽어가면서 동생 알료샤에게 하는 말이다.
알료샤, 나는 살고 싶어. 논리를 거역해서라도 살고 싶어. 내가 비록 사물의 질서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봄이면 싹을 틔우는 끈적끈적한 잎사귀들이 소중하고, 파란 하늘도 소중하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해.
오종우지음,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126쪽
결국 사람이 잔잔하지만 깊이 행복을 느끼는 건 바로 이런 소소한 순간이고.
고난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힘을 얻는 것 또한 이처럼 흔하고도 하찮은 감동이다.
대륙을 호령하고 황금으로 몸을 감싼 들,
철철 흐르는 피의 홍수 위에 세워진 승리가,
과연 거리낌 없이 평화로운 마음과 행복감을 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