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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ug 29. 2024

가을은 온다

은이의 충실한 밥

8월이 끝을 보인다.

기한이 되어서야 앱으로 주민등록 비대면사실조사를 마쳤다.

간편해서 좋네, 하다가 신용카드 명세서처럼

누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특정인의 일상을 일일이 추적할 수도 있겠다, 는 떨떠름한 기분이 남았다.


더위살짝 누그러들었다.

30도를 훨씬 넘기는 무더위에서 기온 1~2도 차이, 습도 4~5% 차이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모처럼 저녁 기온이 30도 아래로 떨어진 날,

이 차게 느껴져서 잠깐 난방을 켰더니 

눅눅한 바닥에 온기가 돌면서 발바닥에 닿는 뜻한 감촉이 좋았다.

날이 선선해지면 반드시 휴대폰을 멀리 할 것이며.

작업에 열중하,

하루 세끼 꼬박꼬박 삼 첩 반상을 차려 먹어야지.

하지만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기는 날씨는 한동안 계속될 기세이고,

9 중순에는 추석 연휴가 있으니.

그 뒤에나 차분하고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겠네.

아, 추석 전에 꼭 끈질겼던 여름의 흔적을 여름 물건을 정리해야겠어.



외할머니 생신이 다가온다.

여름 끝자락, 가을 시작쯤인 외할머니 생신에 가족들이 모이면 매번 더위에 시달린 하소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하.

그러고 나서 곧 있을 추석 준비로 이야기가 옮겨가는 순서.

이번에는 막내 할머니,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막내 여동생께서 외할머니가 숙소에 계시는 며칠 동안 함께 계실 예정고,

생신 날 점심 때는 외할머니의 두 남동생인 작은할아버지들이 부부 동반으로 오신다니 적북적하겠구나.

다들 연세가 있으셔 모일 때마다 번번이,

오늘우리 오누이들이  모두 살아서 만나마지막 날일지도 몰라, 하시는데.

여름을 지나면서 외할머니 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사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전시회 실무팀에게는 두 번째 밥을 전달했다.

메뉴는 동태 전, 무말랭이를 넣은 마른오징어채 무침에 오이냉국, 그리고 콩나물 비빔밥을 준비했다.

 비빔밥은 콩나물 무침과 소고기 볶음, 계란 프라이와 양념장을 먹는 사람 입맛에 맞춰 분량을 가감할 수 있게끔 다 따로따로 포장했다.

다들 맛있다, 며 그릇을 싹싹 비워주셔감사하지.

작가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은 이미 콘텐츠 다섯 편을 올렸고 전시회를 마칠 때까지 매주 두 편씩 공개한단다.

인스타그램에는 매일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는 짧은 콘텐츠를 올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아서 무척이나 고무된 분위기이다.

유튜브 채널 콘텐츠들은 작품 소개에 더해 평론가가 상세하게 작품을 해설해서 문외한이라도 어렵지 않게 볼 만했다.

하지만 음악도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게 감흥이 더하듯

미술 작품도 전시장에서 직접 보는 편이 훨씬 느낌이 있다.

작품에는 작가의 마음이 들어 있어서 관람객이 작품을 대면하여 유심히 바라볼 때,

작품이 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거든.

작품들과 작가의 글을 엮은 책도 출간 예정이라 하니 선배는 이제 건강만 회복하면 되겠네.

진솔하고 성실한, 재능 있는 선배가 좋은 여건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 기를 은이는 진심으로 바랐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선배들이 은이에게 전시회 전에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작품들을  봐두라고 하신다.

안 그래도 전에 보고 나서 자꾸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생활비를 아낀다고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지만,

은이는 작은 그림을 구입할 생각이고.

겸사겸사  생활비를 5만 원씩 줄이기로 한다.

이사한 뒤에 살림살이 장만하고,

기본적인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구비하느라 지출이 많았는데.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지출이 줄어들었다.

필요한 걸 다 사놓아서 더 살 것이 없는 데다

식욕이 떨어지니 덜 먹고,

집 밖에 나가지 않아서 외식비 항목이 줄었거든.

 소탈하고 단출하게 생활하, 

물건 덜 사고 식당이나 카페 가는 횟수를  줄여야겠다.



외할머니 생신상해 큰 이모께서 전화를 주셨다.

외가에서는 어른들 생신에 항상 큼지막하게 무를 잘라 넣어 뭉근하게 끓이는 소고기뭇국을 차리.

친가에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주인공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했는데요.

큰 이모는 소고기뭇국과 노인들이 드실 만한 푹 무르게 익힌 갈비찜을 해오신단다,

외삼촌께서는 과일과 간장게장을 주문하셨다고.

전과 새우전, 그리고 도라지 무침과 잡채 재료를 이모가 준비할 테니,

은이와 큰 이모가 숙소에서 음식을 함께 만들면 어떨까?, 물으시네.

당연히, 좋아요!

상냥하고 솜씨 좋은 큰 이모랑 나란히 음식을 만들면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신나고요.

은이가 집에서 해산물 냉채를 준비해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큰 이모께서는,

우리 은이가 이렇게 잘 자라서 이모랑 같이 할머니 생신상을 차리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다며 울먹이셨다.


부모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말은 조용히 삼키셨겠지.

내가 맏딸인 건 알았지만 외딸은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무 싫어, 하시면서,

귀여워하 '우리 막내'를 잃은 고통을 에둘러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우리 인생에는 별일이 다 일어나지, 하.

살다가 정말 놀랄 일이 벌어지더라도 호들갑 떨지 말기.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줄 놓지 말기,를 기억할 것.

해산물 냉채새우와 전복에 배, 밤, 표고버섯, 당근과 오이, 깻잎을 손질하고,

잣소스는 따로 만들어 가상 차리기 직전에 재료 버무려야겠다.

큰 이모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앗, 한치 초무침을 맛있게 먹은 초여름 밥상이 떠오르네.

한치 대신 주꾸미와 미나리로 초무침을 만들어도 괜찮겠지?

만들자.

음식이 남으면 손님 싸드리면 되니까.

은이 마음이 바빠졌다.



선배의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동문들은 물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았다는 일반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화단의 평가도 좋았고 작품들도 적지 않게 팔렸다.

병상에서 영상으로 인사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건강 문제 외에는 완벽했다.

은이가 구입한 작품에는 작은 스티커가 붙어있었지.

이 그림, 제 거거든요, 속으로 쫌 으스대면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을 뒤에서 지켜봤네.

확실히 절박함이 사람도, 작품도 깊이 있게 한다.

선배의 그림에서는 일상적이면서 지독하게 끈덕진 욕망의 그물망을,

마침내  뚫고 나온 해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고뇌가 깊었을까.

나는 절박하거나 간절한 게 없어,

뇌라는 게 없지.

그게 나의 한계야.

은이는 중얼거린다.

없는 걸 있는 척할 수는 없잖아.

내 삶에 정직함으로써 방식 깊이와 찾아내겠다 은이는 생각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에 희망의 씨를 뿌려서.

뜨거운 여름날, 땀 흘려 밭을 가꿔온 이들은 결실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결실이 반드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공이나 명예는 아니야.

그런 결실은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부산물이지.

공들여 어딘가를 향해 가는 행위 자체 중요해.

과정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인식이 깊어지며,

사람이 성장하고 인품이 성숙해지는 거.

그래서 자기라는 한계를 확장하면서 헛된 것에서 진정 자유롭고 홀가분해지건,

인생의 본질 성실했다면 누릴 수 있는 진짜 결실이 아닐까?

은이는 묵묵하게 자신의 밭을 갈 것이다.

지치지 않기.



외할머니는 생신상을 받으셨다.

또르륵,  눈물을 흘리셨지.

기뻐서 그래, 하시며 손수건으로 꼭꼭 누르셨어.

인생이 언제나 행복해야 하는 건 아니더라.

고통을 통해서 수 있는 게 있거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서 한 해가 이루어지고.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매운맛이 어울려서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듯이,

인생도 좋고 나쁜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지.

병원에 누워있으니까, 인생이 뜬구름 같고 뭘 그리 아등바등하나 싶기도 해.

착하게 살아.

그러떳떳해.

착하다고 복을 받는 건 아니지 운명이 가혹할 때, 신에게 따질 수는 있거든.

나한테만 이러셔욧!, 하면서요?

은이가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보였다.

그럼 그럼, 내가 떳떳하면 아주 호기스럽게 항의할 수 있지.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말씀하시는 외할머니를 보면서 은이는,

사람이 착하다, 바르다는 최종적인 평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가혹한 은이에게 예전에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있었다.

나도 젊었을 때 칼날 같았어.

사람의 허점, 부족함을 조그만치도 용서하지 않고 가차 없이  비난했었지.

나 자신에게도 결코 관대하지 않았어.

종종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내가 세상에 내놓은 어리석은 언행을 괴로워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지금은 그래,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성인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과 악, 장점과 단점이 49 대 51, 또는 51 대 49 언저리에서 맴돌지.

선 쪽이 훨씬 우세하면 우리는 훌륭하다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훌륭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야.

또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면도 있고 말이지.

못난 사람들은 훌륭한 이라 하더라도 자기편이 아니면 약간의 부족한 점을 공격하며 좋은 부분까지 깎아내리려 드는데.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좋고 나쁜 모든 을 두루 살펴야겠지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언제, 무엇에, 선하고 나빴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야.

보통 때는 호인이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해지고 비열해지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공의 선이라는 기준에서 선택하고 행위했다면,

그 점에 가중치를 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중요한 점이거든.

어떤 사람의 행위선량한 의도가 깔려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그런 사람은 계속 인간적인 발전할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성찰이 전제되어야 하지.

이런 점이 인간에 대한, 또 사회에 대한 평가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러니까 지금 부족한 점이 보여도 마음이 선량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볼 줄 알면서, 

더 나은 자기가 되겠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갖췄다면,

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나는 좋은 사람이다, 전망이 보이는 사람이다, 하 판단하지.

그런 노력이 멈추고 자신의 언행이 무조건 맞다고 우기거나 자신의 허물이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란한 언설로 합리화하려 들면,

딱 보기가 싫어지더라고.



그래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자세를 언제나 지키겠어요.

항상 나의 언행을 돌아보고 착한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놓치지 않을게요.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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