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대기를 가득 채운 습기와 치솟은 기온은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았다.
청명한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우르릉 쾅쾅,
지상으로 굵은 물줄기를 내리꽂곤 했다.
가파른 언덕, 작은 집에 오도막이 들어앉은 은이는 날을 바짝 세운 하늘이 무서워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
더위는 싫지만 홀로 고립되어 지내는 침묵과 고요함은 퍽이나 은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씩이나 밖에 나가지 않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가급적 줄이면서.
부엌이 너무 더우니 불 쓰는 요리는 최소로 줄였지만
음악을 틀어놓고 느릿느릿 끼니는 꼬박꼬박 챙겼고,
밥 먹고 나면 과일을 깎아먹고 차를 마시면서 호젓한 시간이 줄 수 있는 구름이 둥둥 떠가는 공상의 세계를 즐겼다.
옛날옛적 멀고 먼 유형지,
가시 두른 돌담에 둘러싸인 작은 집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유배자가 이랬을까.
아득히 바라보이는 구름이나 벗 삼을까,
무심하게 바람이나 드나드는 무위의 나날.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진 기분으로 은이는 세상을 구경했다.
여전히 거짓은 기세 등등 큰소리를 치고,
잔인한 칼질은 계속되며,
한껏 오른 물가는 사람들의 목을 죈다.
앞날에 대한 암울한 예상과 과녁이 틀린 무작정한 증오심.
저벅저벅, 발 밑이 흔들리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은 다가올 날들을 불안해했다.
은이는 읽으려고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았는지만,
책을 펼쳐도 몇 쪽을 채 못 읽고 그만 휴대폰을 집는다.
편하게 앉아 책을 읽으려던 안락의자는 멍하니 주저앉은 웅덩이가 되어버렸네.
몸을 일으키기도, 휴대폰을 내려놓기도, 밥을 먹기도,
좀 있다, 좀 있다가 하며 미루고 또 미루면서,
휴가라 생각하자, 고 게으른 자신을 허용한다.
어느 날, 사소한 물건을 찾는데 도대체 보이질 않아.
가끔 이런 적이 있다.
어딘가에 넣어두고 깜빡했겠지.
예전에는 집이 넓어서 그런가 했지만
은이 혼자 지내는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물건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세상 어딘가에는 물건도, 의욕도, 생활 리듬도 몽땅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있나 보다.
단톡방에서 바자회 얘기가 나왔다.
지난봄 바자회가 성공하면서 친구들은 가을 행사를 기다린다.
추석 연휴 지나면 본격적으로 준비하자는데 은이는 걱정이 있다.
우선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장소를 구한다 해도 비용 문제가 걸리겠지.
그보다 더 꺼림칙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니,
바자회에 물건을 내놓는 사람에 따라 물건들의 원래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일상적으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쓰는 친구가 있고,
저렴한 제품만 찾아 입는 친구가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익명의 사치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알고 지내는 또래들 사이에서 소비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날 때,
일렁이는 미묘한 감정과 표정의 변화를 은이는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지만 직면하는 순간 무심하기는 어렵겠지.
이 문제를 보다 유연하고 성숙하게 풀어낼 방법은 없을까?
한참 위 선배가 있다.
은이도 들어서 알고 있는 학교의 전설,
그러니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재능 하나로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고,
청년 작가로 앞날이 기대되었으나.
생계 문제에 부닥쳐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하면서 화단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안타까운 사례로 입에 오르내렸다.
학생 때 그렇게나 선한 성품에 스타일이 좋고 잘 생겨서 다른 학교 여학생들까지 보러 왔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 몹시 어려운 병을 진단받았다.
치료보다 악화 속도가 빨라서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데.
그동안 선배는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꽤 많은 작업을 해놓았고,
작품들의 완성도도 높았다.
선배의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작가와 작품을 알리기 위한 유튜브 채널과 SNS를 개설했다.
선배의 작업실을 지키려는 모금 계좌를 열었고,
각자 직업과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실무팀을 꾸렸다.
이 실무팀을 지원하기 위해 또 선후배들이 나섰다.
은이는 전시회 준비를 마칠 때까지 실무팀에게 두 번의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첫 번째 식사를 준비하기 전,
열흘 만에 골목을 나선 은이는 볕이 따가운 언덕을 내려간다.
돈가스 전문점에서 돈가스 정식을 싹싹 해치우고,
카페에 가서 뒷골이 찌릿할 정도로 차고 달고 새콤한 빙수도 한 사발 뜨고요.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한 아름 봐왔다.
뭘 샀게요?
그동안 식사를 지원해 온 선배들은 대부분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탕수육과 짜장면, 짬뽕.
치킨, 닭강정, 보쌈, 족발, 부대찌개나 닭볶음탕, 삼계탕, 제육볶음.
그리고 냉면이나 칼국수, 비빔밥 같은 음식들.
작업실에 기본적인 부엌 시설이 있으니 직접 가서 밀키트를 조리한 경우가 있고.
본인이 요리한 음식을 보낸 선배도 있다고 한다.
더위가 심해지면서부터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해 온 은이는 모처럼 음식을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아롱사태를 골랐다.
부위에 따라 수입 소고기나 우리나라 돼지고기나 가격이 엇비슷하니,
수입 아롱사태를 몇 덩어리 샀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는 자주 먹은 것 같아서 식어도 먹을 만한 소고기 아롱사태 수육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간혹 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지.
그러니 삼치조림도 해야겠다.
보들보들, 간장 양념에 익힌 삼치살은 참 부드럽거든.
집밥 풍의 반찬은 배달로는 먹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둥근 호박도 샀다.
어느 스님이 알려준 방식대로 아주 단순하게 볶는다.
깔끔하니 풋풋한 맛이 좋음.
김치는 있다니까 곁들여먹을 당근과 오이, 푸른 잎채소도 준비한다.
밥은 집에서 쌀을 씻어가 작업실에서 전기밥솥에 올리겠고.
포도와 복숭아.
과일도 골랐다.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식단을 짜고 준비를 하다 보니,
찜통 같은 더위는 여전한데,
응?
불끈, 전투력이 솟네.
재래시장 끄트머리 낡은 건물 옥상에 선배의 작업실이 있었다.
은이도, 은이가 가져온 음식도 아주 반가워하면서 실무를 맡은 선배들은 은이에게 전시회에 낼 선배의 작품들을 보여준다.
전시회에 한껏 의욕을 내던 환자는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고.
작업 중이던 한 선배는 자기가 일하던 자리를 은이에게 내주면서 컴퓨터에 들어있는 글을 읽어보라 하신다.
작가가 작품마다 덧붙인 짤막한 글들이었다.
<아버지의 하직 인사- 나는 그의 모습을 그릴 수 없네>
앙상한 아버지, 말씀하신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아.
나로서는 할 만큼 한다고 했지만 내 인생 후반은 고난과 패배의 연속이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이쯤에서 그만두겠어.
살아내느라 힘과 의지와 용기를 모두 쥐어 짜내서
지금은 물방울 만한 기력도 남아 있지 않구나.
나는 너무나 많은 구차함을 견뎌야 했어.
더는 싫다.
그의 고단한 세월을 보아온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원치 않은 길을 처절하게 걸어야 했던 아버지.
운명은 당신에게 너무 가혹했어요.
선배의 작업실을 나와서 개천길을 걸었다.
해질 무렵이었다.
기온은 떨어지지 않고 바람 한점 없다.
땀이 줄줄 흐른다.
슬픔에 몸이 푹 잠긴 느낌이었다.
따갑게 내리 꽂히는 한여름 오후의 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개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네.
개천의 물살은 다시 잔잔해져 있었다.
밤새 큰비 쏟아진 다음날,
개천을 메운 수초더미가 궁금해서 와본 적이 있다.
상류에서부터 휘몰아치며 내려온 거센 물살에,
키 높은 수초더미는 옆으로 누워 물에 잠겨있었다.
여전히 세차게 큰 물이 흐르고 쓰러진 수초더미에는 쓰레기들이 올라앉아 있었지.
두어 달,
햇빛과 물로 겁 없이 자라나던 풀들은 장마철 큰비로 짧은 일생을 마쳤구나, 생각했었는데.
누렇게 변한 쓰러진 수초더미에서
연초록의 풀들이 꼿꼿하게 줄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줄기들은,
서쪽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햇살에 한없이 투명하게 비추어져,
잔잔한 물살에 호응하듯 일제히 살랑거렸다.
찬란해.
너무도 찬란해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한참을 바라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