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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부자의 저예산 혼자 놀이터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거의 평생을 백수로 살아온 사람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내 맘대로 썼지.

대부분의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약간의 시간은 나름대로 호기심을 따라 무언가를 찾아다녔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 또래는 이제 현역에서 물러났다.

평생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도, 가정생활도 그저 열심히만 했을 텐데.

대부분 개인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고,

그래서 자신이 정말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상태에서,

갑자기 시간과 자유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지금보다 훨씬 긴 시간을 노동해 온 우리 세대 대부분은 스스로 자기 삶의 시간표를 짜보지 못했고.

누구의 평가나 보상에 상관없이 본인 마음 끌리는 대로 살아사람이 거의 없다.


세상을 손절해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 세상을 부유하는 백수 생활 특기자인 나는,

적은 비용으로, 혼자, 나름 보람차게 시간 보내는 가지 방법을 알고 있으니.

오로지 개인의 취향과 경험에, 또 서울에 한정된 경우입니다만,

하여간 풀어볼게요~



먼저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직 희망자든, 취준생이든, 연금을 받는 은퇴자든,

당장 입에 풀칠은 하더라도 경제 활동이 없는 상태에서 놀고 있으려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겠지.

앞날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불확실성의 바다를 떠도는 불안정성이 상수라서,

내 인생을 온통 앞날에 대한 걱정, 근심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

어린이 시절부터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만 왔는데,

원치 않았더라도 백수가 됐으면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걱정 대신 객관적으로 현재의 자신을 분석하고,

원하는 방향을 탐색하는 데 일주일에 몇 시간,

시간을 정해서 한꺼번에 해치우고.

다른 시간은 말갛게 비워서 좋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 안에 쑥쑥 들어오도록 터를 닦자.

걱정 근심에 철벽 쌓기가 잘 놀기 위한 준비운동임.


있는 건 시간뿐이니 비용은 저렴하게.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비용이 발생한다.

차비, 입장료라도 들잖아요.

그렇다고 걸을 수 있는 범위의 무상 시설 안에서만 움직이면 경험이 한정될 수 있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시간이 많을 때 시야를 넓혀야 하거든.

어차피 일을 하게 되면 그것에 집중하느라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시간은 많고 할 일이 없을 때 넓은 세상을 마음껏 탐구하면서

머릿속에서라도 세상 전체를 조망하는 전지적 시점을 키워봅시다.



대한민국이 21세기에 들어와 도서관 시설과 운영 모두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이용자들의 요구를 담아 희망도서 신청도 받고.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가까운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릴 수도 있다.

종이책만이 아니라 전자도서, 영화 DVD나 음반까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규모 있는 도서관에서는 정기적으로 또는 일회성의 각종 강연과 강좌 프로그램이 개설된다.

도서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수준 있는 콘텐츠들이 제공되고.

자발적으로 강의를 찾아온 수강자들은 참석 자세가 훌륭한 편이다.

비용은 대부분 무료.

도서관에는 서가, 열람실과 자율학습실 외에 식당, 휴게시설 같은 부대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구내식당에서 사 먹지 않고 집에서 싸간 도시락을 펼치기는 좀 그런 분위기라서,

입에 쏙 들어가는 주먹밥이나 샌드위치, 텀블러에 든 음료와 간식 정도를 준비해서 휴게실에서 먹을 수는 있다.


문화 강좌는 각종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더라.

시민들이 운동이나 노래 같은 취미활동을 적은 비용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참가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 같은데.

내가 참가한 적은 없고 공지를 읽은 정도라 분위기는 모르겠다.


21세기 들어 잘 갖춰진 시설 중에 각종 박물관이 있다.

우리 자랄 때는 박물관은 옛날 물건 모아놓은 국립중앙박물관 정도나 알았는데.

지금은 과학, 생태계, 공예, 생활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분야 별로 공공 또는 사설 박물관이 확충되고 있다.

박물관마다 전시와 학술 연구 외에 시민 대상 강연이 개설된다.

정기적으로 또는 계절 별, 특별 강연 등 교양 수준의 내용이라 어렵지는 않으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로 문이 활짝 열리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시민들이 결성한 회원제 모임이 있다.

강의, 국내외 답사 등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비용이 적지는 않다.

나는 아주 옛날에 참가했었는데,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니 회원 간에 친분이 생길 수 있는 구조라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음.


미술관에서도 갖가지 전시회가 열리고,

때때로 도슨트가 미술작품을 해설해주기도 한다.

큰 전시회의 경우 연관된 강연이 개설되는 경우가 많다.

예술, 과학이 멀리 있지 않아요.

내가 가면 문이 열린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나 분위기 깔끔한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 많으므로,

전시물을 보거나 강연을 듣고 카페에서 쉬다 와도 좋지.

음악, 무용 같은 여러 공연도 무료 거나 저렴한 티켓이 있다.

검색하면 나올 거임.



가만히 앉아서 하는 활동은 답답해서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겠다면 수목원이 좋다.

울타리 안이라면 안전하고 정돈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공부도 되면서 공기도 좋아요.


전국 여기저기 온갖 둘레길이 있다.

관리가 잘 되는 편이라 안전하게 자연을 누릴 수 있지.

절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절에 가면 걷기, 등산, 구경, 기도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서울에는 잘 가꿔진 궁궐이 있다.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고 차분하다.

일반입장권도 있지만 통합권이나 기간제 같은 특별한 입장권을 구입하면 약간이라도 저렴하게 돌아볼 수 있고.

관심이 있다면 전통 건축을 공부할 기회도 된다.

공원, 산과 강- 혼자 어슬렁어슬렁 찾아가서 한나절 마음을 가라앉힐 곳들이 멀지 않다.

벤치나 화장실 시설이 잘 갖춰지고 관리되어 뿌듯하다.


생활과 관련된 활동으로는 온갖 분야의 대규모 전시회들이 있다.

건축 관련, 캠핑용품, 식품 등등.

한번 다녀오면 거기서 받은 자료들만 들춰봐도 한동안은 바쁘지.

관련 산업 종사자가 아니어도 세상 돌아가는 구경 차원에서 볼 만하다.


구경과 걷기를 좋아한다면 이른바 시장 조사, 즉 아이쇼핑이 있다.

요새는 벌렁 드러누워서 손가락으로 쇼핑을 끝내긴 하지만.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도 하고 상가를 둘러보는 놀이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장이나 백화점에 들어가 내게 소용 있거나 없는 갖가지 물건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흥미롭지.

특정한 종류의 물건만 찾아다니면서 가격, 제품 종류, 재질, 디자인 등등 물건에 관한 빠삭한 정보를 모을 수도 있다.

멋쟁이가 되고 싶으신가요?

먼저 시장조사를 권한다.

옷이나 소품들을 많이 보면서 안목을 키우고 정보도 얻자.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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