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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기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지난주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 가는 데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꼼짝을 못 하다가.

월요일 오후에 장을 보러 나갔다.

더웠지.

집에 들어오자 곧 몸에 이상이 시작되더라.

한낮은 피해 조심조심 다녀왔는데도 더위를 먹었는지,

열나고 기침하고 콧물이 줄줄 흘렀네.

한동안 또 몸져눕는가,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취한 조치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컨디션이 한결 나아있었다.


그런데 무서움이 남았다.

오늘 도서관에 가려고 도시락까지 넣은 가방을 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6월에 겪었던 심한 햇빛 알레르기와 월요일 밤에 나를 힘들게 했던 오한과 발열이 와락 떠올랐으니.

막 나가려고 집안의 플러그까지 다 뽑았는데,

이제 가방 들고 신발 신고 현관문을 열면 나가는 건데,

왈칵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래서 종일 먹으면서 빈둥빈둥 유튜브를 시청 중이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으나 집에 꼼짝없이 묶여버린 나.

대신 캠핑과 여행 콘텐츠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까, 하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오늘은 여행 짐 싸기에 꽂혀버렸네.

대부분의 콘텐츠가 여행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소개하고,

없어도 되는 물건 또는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지적하면서,

모두모두 효율적인 짐꾸러미를 강조는 하더라만.

그럼에도 풀어놓은 짐도, 차곡차곡 챙겨 넣은 가방도 산더미라.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는 내게는 무거운 짐 싫어, 하는 불편한 기분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영어권 여자의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봄날 파리 10일 정도 여행에 10리터짜리 오스프리 배낭 하나,

여름에 2~3일 바닷가에 다녀오는 데는 3리터짜리 유니클로 손가방 하나가 전부.

와!

편집도 군더더기 없이 리드미컬하게 해서 참 재미있게 보았는데.


짐을 줄이려면 우선 핵심적인 물건만 가져가야 하고.

- 그래서 화장품도 딱 기본적인 것만,

선글라스는 안경 위에 끼었다 뺐다 하는 것으로.

속옷, 양말은 착용한 것에 하나씩만 더.

신발은 신고가는 것뿐이다.


옷은 겹쳐서 입고 벗으면서 서로 잘 어울릴 만한 것들로 골라서,

한 세트는 입고 가고,

지금 입은 옷들과 코디를 맞춘 얇고 가벼운 몇 가지 옷은 손바닥만 하게 접어서 가방에 넣더라.

멋도 부리고 추위에도 대비하는 스카프 하나는 배낭에 묶고 말이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라, 하면서 꾸역꾸역 가방에 물건을 집어넣는 나로서는,

정말 배우고 싶은 태도였다.



더위가 가시면 가볍게 싼 여행 가방을 둘러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지.

기필코!

짐을 줄이자.


하, 그런데 매일 먹는 약만 해도 한 보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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