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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갇힌 날들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정말 견디기 어려운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나는 한겨울이나 한여름이 오기 전,

밖에 다닐 만한 날씨일 때 미리미리 먹을 것을 준비해 둔다.

장도 봐오고, 배송도 받고 해서.

올해도 그랬다.

은둔의 날들을 위해 먹을 것과 생활용품을 잔뜩 쌓아두긴 했는데,

그걸로 다 되는 건 아니라서 중간중간 신선식품을 보충해야 한다.


택배 또는 배송기사님이라는 전문가들도 이런 혹독한 날씨에 이집저집 물건을 배송하다 보면 분명히 몸이 축날 거라서,

가급적 궂은 날씨에는 주문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지독한 더위로 집에 갇혀 보내는 요즘,

인터넷을 보자니 배달 물량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아르바이트로 배달 일을 하는 어느 주부는 일이 많아져서 수입이 늘어난 건 좋은데 몸이 너무 힘들다, 하시고.

가끔 물류센터에 나가시는 어떤 중년은,

작년에도 그랬는데 여름마다 자신을 불러주는 횟수가 늘어난다면서,

확실히 소비자들이 더운 여름에 주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고 한다.


더위에다가 민생회복지원금까지 지급되니 식당에서 외식도 쉽게 하고,

주문 배달도 많아지며,

택배 물량도 급증하는가 보다.

더해서 올여름 참외, 수박, 토마토, 양파 같은 품목에서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최상품은 제외지만 보통 먹는 수준에서는 운반비도 안 나오겠다는 걱정이 든다.

그래도 불경기에 시달리느라 위축됐던 사람들이 밥 한 끼라도 돈 걱정 안 하고 주문할 수 있어 참 좋구나, 싶고.

모처럼 북적거리는 업장에서 바쁘신 자영업자들이 밤늦게 결산하면서 웃음이 나올 테니, 다행이다.

다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극심한 더위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더위에 갇혀있는 나는 종일 주섬주섬 먹으면서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는데.

책에 썩 집중이 되지는 않는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한국어로 번역된 벤야민의 저작물을 모두 읽는 게 목표이긴 한데.

나는 목표를 이룬 적이 없는 사람이라 부담감은 갖지 않는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발터 벤야민과 그의 오누이는 자랄 때는 상당히 지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키웠는데.

학자로서 학문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집안이 기울어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그의 학문은 제도권에서 인정을 못 받았기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도 없었다.

건강하지 못한 신체로, 경제적으로 심하게 어려운 가운데, 그는 오로지 명민한 두뇌로 자신의 학문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갔는데.

나치가 권력을 잡으면서 유대인이라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고.

도서관에 붙박여 세상의 핵심을 통찰하는 독자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다 프랑스까지 나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미국으로의 도피가 좌절되면서 그는 소지하고 있던 치사량의 모르핀을 삼켰다.


그의 삼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 모두는 나치 때문에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 형제는 죽음을 당했다.

그럼에도 삼 남매와 배우지까지 개인적인 영화를 탐내지 않고,

더 옳은 것, 근원적인 것을 찾아 이 세상에 튼튼한 족적을 남겼으니.

그들이 자란 환경이 궁금하다.


모르핀을 삼키는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내 심장이 찔리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면서 슬픔이 차오른다.

저 세상에서 지극한 평화를 얻으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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