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은,
- 누구라도 인생의 시련이나 고달픔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제법 평온한 마음 상태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렇거든요.
분명히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내 인생 또한 위태로운 처지를 피해 갈 수 없는데.
그럼에도 투명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는 듯,
내 마음은 고요하다.
음악과 책이 만들어주는 안온한 캡슐 안에 들어앉아 세상의 풍파를 한 발 떨어져서 겪어내는 느낌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은이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아 재정적으로 편하고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 같은 작품을 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살아있을 때 이미 충분히 영광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책이 잘 팔려서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정치적인 기회도 얻었으며.
여러 여자들과 사랑하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더해서 사후에도 여전히 평가가 좋아서 그의 작품들은 고전으로 자리 잡았지.
물론 인생의 우여곡절까지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가 겪어낸 고난의 여정은 오히려 훈장이 되었습니다.
살아서 이미 유명했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고달팠던 예술가들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나마 중년에 복덩이 아내를 만난 덕에 작가로서도, 재정적인 면에서나 가정적으로 비로소 안정되었지만.
그전에 그의 삶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켜켜이 쌓인 상처와 고통으로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독보적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동시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통증은 내내 작가의 마음을 괴롭혔다.
자식으로는 남매를 두었는데 그렇게 대단한 작가 아버지와 영리하고 헌신적인 어머니를 가졌음에도,
부모 좋은 건 전혀 닮지 않았는지 두고두고 어머니를 괴롭게 했다고 한다.
딸은 나중에 돈 벌려는 목적으로 부모에 관해 없는 얘기까지 만들어 떠들었다고.
살아서는 유명했는데,
또는 한때 명성이 자자했는데 곧 잊힌 예술가들이 태반이다.
지나고 보면 뭔가, 싶은 거지.
무엇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또 학계에 자리잡지 못한 학자들은,
작업물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고 평생 힘겹게 살아가다 이름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 우연히 또는 그들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죽어서 비로소 알려지고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소설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이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 고흐,
철학자, 학자, 작가, 평론가 같은 여러 호칭이 붙지만 내가 볼 때는 지성인 그 자체인 발터 벤야민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허먼 멜빌은 작가로서 초기에 잠깐 평가를 받았지만 곧 잊혔다.
자식 문제, 재정 등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세관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지만,
72세로 죽었을 때는 그가 소설가였다는 사실조차 묘비에 적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후 30년이 지나 '모비딕'이 재평가되면서 지금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문호이다.
고흐의 생애야 너무 유명하지.
무명의 고흐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심리적인 지지대가 되었던 동생은,
고흐의 죽음 이후 얼마 안 가 사망했다.
그래서 동생 테오 아내의 노력으로 고흐의 작품들은 사후 세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발터 벤야민의 재능과 성과물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평가를 받았지만 학계에서는 자리잡지 못했다.
다들 안타까워하며 도와주려 애썼던 것 같은데.
하필 그가 연구에 몰두하고 학문적 성취를 얻었던 시기가 나치 치하였고, 그는 유대인 혈통이라.
독일을 피해 파리로 온 그는 궁핍하게 생활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거리를 걸어 다녔다.
나치는 프랑스에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그는 그동안 작성한 원고를 도서관 사서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가기 위해 파리를 떠났는데.
프랑스 국경에서 길이 막히자 그는 갖고 다니던 모르핀을 삼켰다.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다 보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뒷받침해 주는 글귀를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망명지에서의 삶은 더욱더 고달팠겠지만
그래도 세상의 근본을 통찰하려는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책을 읽고 거리를 걸으면서 사유하는 동안
아, 그렇지, 세상의 본질을 파악한 기쁜 순간들은,
그가 처한 캄캄한 현실을 뛰어넘었으리라.
조르주 바타유가 '인상주의 그 자체'라고 평가하는 마네는 평단이나 대중으로부터 모진 비난과 야유를 받았는데.
조르주 바타유가 마네에 관해 쓴 책을 읽으면,
마네가 굳건한 의지의 소유자라서 그런 부당한 대우를 견뎠던 게 아니었다.
마네 또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고,
그래서 유명해지고 돈을 벌어서 잘 쓰고 싶었고.
아리따운 여성들의 사랑도 받고 싶어 했던 보통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욕망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분명히 있었으니.
자신답게 살자는 다짐으로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