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언젠가 남자 동창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마 마흔 살 언저리였을 걸.

다들 결혼했고 아이들이 있었다.

누가 방 얘기를 꺼냈다.

부모님 댁에 살았던 30년 동안에는 문 닫고 혼자 뒹굴거릴 내 방이 있었는데,

결혼한 뒤로 자기 공간이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다들 격하게 공감하심.

분명히 내가 벌어 샀고, 내가 번 돈으로 유지해 가는, 내 소유의 집인데,

어느새 집은 아내와 아이들의 공간이 되어서,

휴일에 집에서 하루 종일 쉬려면 왠지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도서관에는 자주 갔지만 그동안은 책을 반납하고 빌리는 용무만 하고는 냉큼 나왔었는데.

도시락 싸가는 재미가 들린 올여름 이후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료실에 앉아서 이 책, 저 책, 잠깐씩 읽기도 하고,

화면이 큰 컴퓨터도 이용한다.

무엇보다 휴게실 또는 이용자를 위해 만든 식당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어느 도서관이나 각양각색의 남녀노소가 드나드는데.

자율학습실에 한번 갔더니 수험생 또는 취준생으로 보이는 청소년과 청춘들이 조용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고생하네, 싶었고.

편한 집 놔두고 아무래도 불편한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며 보내는 청춘이 안쓰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추워지면서 연거푸 도서관에서 자는 중년 또는 노년기 남자 이용객들을 본다.

자료실에서 자는 청춘들은 전에도 봤지만,

자료실에서,

컴퓨터 앞에서,

휴게실에서 엎드려 또는 머리가 뒤로 젖혀진 채 졸거나 자는 중년, 노년의 남자들이 있다.

어느 분은 코까지 골면서 깊은 잠에 빠져있던데.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수도 없고, 파헤칠 생각도 없는데.

한 몸 편하게 쉴 만한 공간이 없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날이 좋은 계절에는 산으로, 강으로, 또는 거리를 헤매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지만.

이처럼 추운 계절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돌 수 없으니.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걱정되더라.


하여간 내 한 몸 마음 편히 있을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라도 졸거나 쉬거나 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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