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예전에 여행 갔다가 숙소에서 이야기 나눴던 처자가 갑자기 생각났다.
좀 느지막이 공동부엌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저쪽 테이블에 처자 한 분이 편의점에서 산 듯한 빵을 먹고 있었다.
어딜 가나 빵빵한 식량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나는,
이것 좀 드실래요?, 하면서 먹을 것을 내밀었고.
그분은 깜짝 놀라며 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들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서 각자 먹다가,
드립백 커피를 내리면서 의자 각도를 조금 돌렸고.
그분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 나와서 직장을 몇 년 다녔는데,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서울에 와서 7급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분의 진짜 문제는 직장보다 억압적인 부모였는데.
순둥순둥하고 무던한 성품으로 보이는 그분은 지금까지 자기 생각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가 가라는 대로 고향의 국립대에 장학금을 받아 진학했고.
학교 다닐 동안 오로지 취업 준비만 해서는 졸업하고 곧 취직했다.
월급을 어머니가 관리해 준다고 가져가서는 약간의 용돈만 받았을 뿐,
몇 년을 직장 다니면서 자기 맘대로 돈 한 푼 써보지 못했다.
이제는 결혼하라는 압력으로 들들 볶이는 중이었다.
그대로 고향에 있어서는 평생 부모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아,
서울 가서 7급 공무원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고.
먼저 직장을 그만둔 뒤에 부모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부모에게 덤비고 대들어서,
간신히 얼마의 돈을 받아내 서울에서 시험 준비를 했고,
지금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여행을 온 것이었다.
7급 공무원이 되면 대출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다는데,
그러면 집을 구할 수 있겠죠?
어느 동네가 좋을까요?
-등등 애써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며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던데.
내가 봐도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정말 답이 보이지 않더라.
그동안 번 돈을 포기하더라도 부모에게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서른 넘은 나이에 자신이 가진 경력으로 서울에서 온전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겠지.
돈이 떨어져서 더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만약 그분이 자신의 입으로 시험에 떨어질 경우를 얘기했다면,
그분에게 진심으로 '능력 있고, 성실하며, 참을성이 있는 데다, 자신이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또 도전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
지금 실패하더라도 그건 과정일 뿐.
결국은 아주 좋은 인생을 살아낼 사람이다'라고 얘기했을 거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실패의 불안에서 도망치려는 가련한 심정에 대고 섣부른 위로는 할 수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과 발표 나서 일 시작하면 한동안 여행하기 어려울 테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지금은 오직 여행 그 자체만 즐기시라고.
내가 보기에는 아주 잘 살 사람이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합격했기를.
더는 힘들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임감과 능력을 갖춘 공무원으로 서울 행정에 기여하며 잘 살아가고 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