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가마솥

어머니가 차리셨던 밥상

by 기차는 달려가고


*명절 준비


우리 집 뒷마당에는 장작 때는 아궁이가 두 개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평소에는 강아지나 넘실거릴 뿐 식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명절이 다가오고 날이 추워지면 아궁이와 가마솥은 그 쓰임을 드러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가마솥을 말끔하게 씻는다.아궁이 옆에는 장작을 쌓는다.드디어!그날이 오면 가마솥에는 찰랑찰랑 물이 담기고, 아궁이에는 장작이 들어가고, 뼈와 고깃덩어리가 풍덩 빠진다.곰국의 계절이 온 것이다. 평소에는 내 방도 치우지 않고 다니는 실력이지만.그래도 명절이나 김장처럼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벙벙 거리면서 심부름은 잘하던 나는, 가마솥에 불 땔 일이 생기면 아궁이를 꿰차고 앉았다.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갈비를 새기고, 생선을 말리고, 김치를 담그며 명절 준비에 바쁘신 어머니와 할머니, 일하는 아주머니는.각각 떡을 썰고, 만두를 빚고, 빈대떡을 지진다, 적을 굽는다, 고기를 재운다, 나물을 무친다...솜씨 부리는 일만으로도 바쁘니 곰국 끓이는 아궁이에 장작 때는 직분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매서운 바람으로 코는 빨갛게 어는데,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매캐한 연기가 나오는 아궁이 안으로 머리를 디밀어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인다.잘 마른 가느다란 불쏘시개는 쉽게 불이 붙어 파닥파닥 불꽃과 소리가 요란하지만정작 가마솥을 끓여야 할 두툼한 참나무 장작들은 저항하는 듯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껍질에 불이 붙는가 싶다가도 뒤척이면 곧 불꽃은 꺼멓게 죽어 버리고. 잔가지들의 팔랑거리는 불길 세례를 받는 굵은 장작은, 뜨거워졌나 싶어도 두툼한 장작의 몸뚱이는 좀처럼 불길에 휩쓸리지 않는다.요령 없이 무작정 덤비는 나는 연기에 연신 잔기침을 하면서 장작을 이리저리 옮기며 한참을 실랑이하다 보면,드디어 담벼락에 삐죽이 솟은 연통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아궁이의 장작더미는 세찬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게 시작한다.일단 타오르기 시작한 장작더미는 곧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되어 무서운 기세로 아궁이 안팎을 넘실거리면서,노랗고 붉은 불길은 쉬익, 쉬익 세찬 회오리를 만든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뜨거움과,거침없는 강렬한 빛과, 탁! 탁! 불에 타면서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에,맵싸한 연기 냄새에,휘익 휘익 소용돌이치는 바람까지.아궁이 속은 아수라. 한겨울 추위로 목덜미는 시린데 아궁이 열기로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제 불길은 거리낌 없는 맹신이 된다.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더미를 홀린 듯 바라본다. 불꽃은 나를 빨아들이고 나는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머릿속은 텅 비어 버린다. 태고의 기억일까?뭔가 아스라한 아픔과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불길은 나를 잡아당긴다.그렇게 타오르는 순정의 불길은 무서운 기세로 장작을 소멸하고.때로 던져지는 편지나 일기... 의 형체를 순식간에 집어삼킨다.거침없는 불길은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을 태우고, 사라지고.불꽃의 유혹에 홀려버린 나는 한없이 장작을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한참을 타오른 불길은 가마솥 안의 국물을 팔팔 끓여 내고.위로 올라오는 수증기는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들썩들썩 밀어낸다.뜨거운 김은 노릿하다가 마침내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부엌에서 어머니는 간간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품을 건지라 커니 장작을 줄여야 한다 커니 지휘를 하시면서 딴 세상에 가있는 나를 깨우시다가. 마침내 뒷마당으로 나오셔서는 김이 오르는 가마솥, 눈앞을 가로막는 거센 수증기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고기 덩어리를 찔러보신다.국물을 우려낸 고깃덩어리는 보들보들 부드러워져서.고기 살은 결대로 쪽쪽 찢어지고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자잘한 노란 기름을 동동 띄우고 있다.장작 그만 넣어.엄숙하게 어머니는 불의 종말을 선고하신다.나는 아쉬워, 너무 아쉬워서 사그라지는 불길의 마지막을 지킨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가족 말고는 명절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살림 규모가 줄어들면서 뒷마당의 아궁이까지 나서야 했던 명절 준비는 사라졌다.단출해진 가족에 맞춰 집을 고치면서 아궁이와 가마솥은 사라지고 거실에 대리석 벽난로가 들어앉았다. 겨울 내내 손톱 밑에 검은 때가 지지 않을 만큼.나는 추운 겨울밤 벽난로 앞에 자리 잡고는 몇 가닥의 장작을 지피면서 벽난로의 따스함과 작은 불꽃에 퐁당 빠지곤 했었는데.바람의 방향에 따라 배기가 제대로 안 되는 날은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매운 연기와 바닥에 까맣게 내려앉던 재의 기억으로,그 뒤처리가 번거로웠다는 사실이 토닥토닥 붉고 노란 작은 불꽃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걸 보면.뒷마당의 아궁이와 달리 그리 산뜻하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옛 기억의 그림자
가끔 시골집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풍경을 보면 예전 우리 집 뒷마당의 아궁이와 분주했던 명절 풍경이 떠오른다.편하고 풍족한 생활은 당연한 듯 생활의 곤고함은 전혀 모른 채.부와 명예라는 세속적 허영은 경계하였으나.내 노력 없이 누리던 안락함을 저버릴 각오나 먹고사는 일의 무거움에 대한 외경은 미처 모르고.무조건 내 인생은 본질로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어야 한다고 우겼던 나의 20대.그 시절의 다짐대로 살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고, 내 의지는 박약하며,또한 삶이란 명분의 이면, 행간의 너무 많은 것들이 인생을 뒤흔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어쩌면 내가 소모하는 많은 것들이 헛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그래도 이건 아니야,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 삼으면서 나의 삶을 합리화하는지 모르겠다. 하여도,순정의 불길을 바라보며 내 인생도 순정의 불꽃이기를 기대했던 그 시절은 여전히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구호처럼,실천되지 않은 채 입에서만 되뇌어지는 건 아닌지- 물으면서.

우리 집 뒷마당에는 장작 때는 아궁이가 두 개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평소에는 강아지나 넘실거릴 뿐 식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명절이 다가오고 날이 추워지면 아궁이와 가마솥은 그 쓰임을 드러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가마솥을 말끔하게 씻는다.

아궁이 옆에는 장작을 쌓는다.

드디어!

그날이 오면 가마솥에는 찰랑찰랑 물이 담기고, 아궁이에는 장작이 들어가고, 뼈와 고깃덩어리가 풍덩 빠진다.

곰국의 계절이 온 것이다.


평소에는 내 방도 치우지 않고 다니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명절이나 김장처럼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벙벙 거리면서 심부름은 잘하던 나는,

가마솥에 불 땔 일이 생기면 아궁이를 꿰차고 앉았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갈비를 새기고, 생선을 말리고, 김치를 담그며 명절 준비에 바쁘신 어머니와 할머니, 일하는 아주머니는.

각각 떡을 썰고, 만두를 빚고, 빈대떡을 지진다, 적을 굽는다, 고기를 재운다, 나물을 무친다...

솜씨 부리는 일만으로도 바쁘니 곰국 끓이는 아궁이에 장작 때는 직분은 내 차지가 될 수 있었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매서운 바람으로 코는 빨갛게 어는데,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매캐한 연기가 나오는 아궁이 안으로 머리를 디밀어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인다.

잘 마른 가느다란 불쏘시개는 쉽게 불이 붙어 파닥파닥 불꽃과 소리가 요란하지만

정작 가마솥을 끓여야 할 두툼한 참나무 장작들은 저항하는 듯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껍질에 불이 붙는가 싶다가도 뒤척이면 곧 불꽃은 꺼멓게 죽어 버리고.

잔가지들의 팔랑거리는 불길 세례를 받는 굵은 장작은, 뜨거워졌나 싶어도

두툼한 장작의 몸뚱이는 좀처럼 불길에 휩쓸리지 않는다.

요령 없이 무작정 덤비는 나는 연기에 연신 잔기침을 하면서 장작을 이리저리 옮기며 한참을 실랑이하다 보면,

드디어 담벼락에 삐죽이 솟은 연통으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의 장작더미는 세찬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게 시작한다.

일단 타오르기 시작한 장작더미는 곧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되어 무서운 기세로 아궁이 안팎을 넘실거리면서,

노랗고 붉은 불길은 쉬익, 쉬익 세찬 회오리를 만든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뜨거움과,

거침없는 강렬한 빛과,

탁! 탁! 불에 타면서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에,

맵싸한 연기 냄새에,

휘익 휘익 소용돌이치는 바람까지.

아궁이 속은 아수라.

한겨울 추위로 목덜미는 시린데 아궁이 열기로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제 불길은 거리낌 없는 맹신이 된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더미를 홀린 듯 바라본다.

불꽃은 나를 빨아들이고 나는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머릿속은 텅 비어 버린다.

태고의 기억일까?

뭔가 아스라한 아픔과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불길은 나를 잡아당긴다.

그렇게 타오르는 순정의 불길은 무서운 기세로 장작을 소멸하고.

때로 던져지는 편지나 일기... 의 형체를 순식간에 집어삼킨다.

거침없는 불길은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을 태우고, 사라지고.

불꽃의 유혹에 홀려버린 나는 한없이 장작을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한참을 타오른 불길은 가마솥 안의 국물을 팔팔 끓여 내고.

위로 올라오는 수증기는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들썩들썩 밀어낸다.

뜨거운 김은 노릿하다가 마침내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부엌에서 어머니는 간간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품을 건지라 커니 장작을 줄여야 한다 커니 지휘를 하시면서 딴 세상에 가있는 나를 깨우시다가.

마침내 뒷마당으로 나오셔서는 김이 오르는 가마솥, 눈앞을 가로막는 거센 수증기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고기 덩어리를 찔러보신다.

국물을 우려낸 고깃덩어리는 보들보들 부드러워져서.

고기 살은 결대로 쪽쪽 찢어지고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자잘한 노란 기름을 동동 띄우고 있다.

장작 그만 넣어.

엄숙하게 어머니는 불의 종말을 선고하신다.

나는 아쉬워, 너무 아쉬워서 사그라지는 불길의 마지막을 지킨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가족 말고는 명절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살림 규모가 줄어들면서 뒷마당의 아궁이까지 나서야 했던 명절 준비는 사라졌다.

단출해진 가족에 맞춰 집을 고치면서 아궁이와 가마솥은 사라지고 거실에 대리석 벽난로가 들어앉았다.

겨울 내내 손톱 밑에 검은 때가 지지 않을 만큼.

나는 추운 겨울밤 벽난로 앞에 자리 잡고는 몇 가닥의 장작을 지피면서 벽난로의 따스함과 작은 불꽃에 퐁당 빠지곤 했었는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배기가 제대로 안 되는 날은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매운 연기와 바닥에 까맣게 내려앉던 재의 기억으로,

그 뒤처리가 번거로웠다는 사실이 토닥토닥 붉고 노란 작은 불꽃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걸 보면.

뒷마당의 아궁이와 달리 그리 산뜻하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옛 기억의 그림자


가끔 시골집에서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풍경을 보면 예전 우리 집 뒷마당의 아궁이와 분주했던 명절 풍경이 떠오른다.

편하고 풍족한 생활은 당연한 듯 생활의 곤고함은 전혀 모른 채.

부와 명예라는 세속적 허영은 경계하였으나.

내 노력 없이 누리던 안락함을 저버릴 각오나 먹고사는 일의 무거움에 대한 외경은 미처 모르고.

무조건 내 인생은 본질로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어야 한다고 우겼던 나의 20대.

그 시절의 다짐대로 살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고, 내 의지는 박약하며,

또한 삶이란 명분의 이면, 행간의 너무 많은 것들이 인생을 뒤흔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어쩌면 내가 소모하는 많은 것들이 헛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그래도 이건 아니야,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 삼으면서 나의 삶을 합리화하는지 모르겠다.


하여도,

순정의 불길을 바라보며 내 인생도 순정의 불꽃이기를 기대했던 그 시절은 여전히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구호처럼,

실천되지 않은 채 입에서만 되뇌어지는 건 아닌지-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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