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어딜 가든 개인이 자신의 통신 수단을 들고 다니지만.
1980년 대에는 유럽에서 여행 중에 한국으로 전화를 하려면 우체국 또는 국제전화가 가능한 부스를 찾아가야 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여행 중에 시내에 나왔다가 마침 19세기쯤의 건물로 보이던 우체국 앞을 지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시차 때문에 집에 전화하기가 애매하던 차.
마침 연락할 때도 되었고 시간도 맞기에
우체국에 들어가서 국제전화를 신청했다. 직원은 부스를 지정해주었고,
나는 집으로 전화했다.
그때 집에 다니러 오셨던 외할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는데,
어머니가 잠깐 외출을 하셨나 보았다.
난청이 있었던 외할머니는 안 그래도 국제전화라 통신의 질이 좋지 않으니.
할머니, 나 누구예요, 말을 해도.
누구시냐고, 누구시냐고.
계속 목청을 높이시며 누구시냐는 말씀만 되풀이 하심.
전화를 그냥 끊으면 외할머니께서 전화 건 사람을 두고두고 궁금해하실 테니,
최소한 전화기 속 목소리가 지금 유럽 여행 중인 당신의 외손녀라는 사실은 알아들으셔야 했다.
나도 덩달아 자꾸 목소리를 높이면서
"할머니 나 누구. 다시 전화할게요."
나도 같은 말만 되풀이 되풀이.
그러다 그러다 겨우 알아들으셔서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고 부스 밖으로 나왔더니.
높은 천정에 하나의 커다란 홀이었던 우체국에서는 내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던 차였고.
우체국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부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나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옴머, 이런.
그때는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외국에 다녀오면 가족,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했다.
우리나라는 생필품의 질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상품도 다양하지 않던 때라.
수요는 있으나 공급은 되지 않던 형편이었다.
무엇보다 선진국의 물건들은 다 좋아 보였던 시절이었으니.
예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외국 물건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런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구경 삼아 들어간 앤틱 상점에서 회중시계와 금속 접시를 산 적이 있다.
(회중시계는 집에 들어온 도둑님이 냉큼 가져가 버렸다.)
다리가 아팠던 외할머니께는 무릎 보호 밴드를 선물한 적이 있고.
친구들에게는 향기와 빛깔이 좋은 세안 비누 같은 것들을 선물한 기억이 난다.
초콜릿도 꼭 샀던 필수 품목.
예쁜 그릇을 좋아하는 나는 가는 데마다 그릇이나 주방도구 몇 개를 기념품 삼아 샀지.
또 옷은 적게 가져가서 현지에서 그곳의 날씨나 분위기에 맞춰 사 입곤 했는데,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어쩐지 분위기에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다 옛날 얘기다.
강산이 몇 번 바뀔 동안 세상은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특히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 속의 위상은 그 시절의 기대치를 훨씬 넘어선 것 같다.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