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로션을 '거의' 다 썼다.
눌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나는 통을 뒤집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바닥이 된 뚜껑에 고인 로션을 몇 번 더 발랐다.
그러고 나서도 손가락을 통 안으로 최대한 뻗어 두어 번 더 쓸 수 있었다.
새 바디로션은 이미 뚜껑을 열었다.
선반의 좁은 바구니에 새 것은 옛 것의 퇴장을 기다리며 서로 끼여있다.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분명히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하기 위해 바디로션 통을 물에 씻으면 벽에 붙어있던 내용물이 딸려 나올 것이다.
두어 번은 더 바를 수 있었을 분량이 말이지.
무슨 고집이 또는 통에 대한 의리가 그리 강해서 여태 통에 붙어 있었니.
이미 잘 쓰인 내용물과 동일한 것이,
어떤 것은 제 용도대로 쓰임을 받고.
어떤 것은 쓰이지 못 한 채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는 것에 나는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내 자신의 유용할 수도 있었을 재능이 버려진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고 하면 상태가 좀 심각한 거죠?)
화장품만이 아니다.
치약도, 튜브에 든 마요네즈도, 병 바닥에 고인 기름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그 쓰임을 다 하게 할 것인가.
(동시에 수질 악화를 막는 데도 쬐~~~~~금은 도움이 되겠지.)
적당한 선에서 아이고, 좋은 녀석이었다.
잘 가라, 친구.
나도 할 만큼은 했네.
깔끔하게 이별할 것인가.
일단 선반에서 내려놓았다.
내일 기운이 되면 길고 가는 막대기에 휴지를 끼워 통 안을 한번 훑고.
아니면, 음.
그냥 물에 씻어 버리면 찝찝한 기분이 남을 것 같다.
번번이 이런 것에 에너지와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