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하시려거든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선물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기쁨을 선사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수많은 물건 중에서 상대를 만족시킬 만한 선물을 고르고 결정하는 과정은 번민과 망설임의 연속이다.

결국에는 제풀에 지쳐서 '답은 돈봉투뿐이란 말인가' 좌절해버린다.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돈이 재량권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건넨다는 건 그만큼의 소유와 사용처를 선택할 권리, 용처를 결정할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과 그 돈의 재량권을 기꺼이 양도, 대단한 호의다.


요새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선물이라는 겸손한 명목으로

그나마 여력이 되는 쪽에서 더 힘든 사람에게 돈봉투를 내민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겠지.

그래서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들이 순수하게 기뻐했던 나라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선물이라면서 번번이 돈봉투를 내밀면 어째 좀 서글프다.

너무 실용적이기만 하다.

섭섭할 때도 있다.


우리 어릴 때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면 지적이고 멋져 보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그렇게 걸핏하면 영어를 섞던 어떤 분 말씀하시길,

"선물이라면 fantastic 하고 surprise 해야지."

하시더라.

흠, 내용은 인정.



가끔은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고 싶다.

머릿속에 새겨진 실용성과 가성비의 속셈에서

해방되고 싶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당신이 준 선물로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각박한 현실의 무거운 옷을 벗고 잠깐 다른 세상다녀올 수 있다면.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이를테면 발레 공연을 가보자.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몸짓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답다.

보통의 세상에서는 없는 움직임이지.

무대에 집중하는 그 시간은 현실이 아닌 딴 세상이다.


수목원도 좋고, 음악 공연도, 도서관도 좋다.

다리가 튼튼하시다면 미술관, 박물관에도 흥미를 가져보시라 권하고 싶다.

또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배낭을 메고 낯선 곳을 헤매는 방랑자도 좋지.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평생 생계에 얽매여 살아야 했던 분들은,

노년기에 다른 세상, 즉 아름다움과 진리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고 단언한다.


혼자서는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살살 (꾹꾹 억눌러왔던) 젊은 시절 꿈의 세계를 가보는 거다.

본인조차도 잊고 있었던 저쪽 세상으로.



그렇지 않고 계속 현실의 세계에서 머뭇거리다 보면,

자신이 끼지 못하는 현실 세계에 화를 내면서.

태극기 들고 광장으로 나가 젊은 사람들의 촛불을 엉뚱하게 흉내 낸다거나.

교회를 빙자한 이상한 모임에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몽땅 바친다거나.

다단계, 노인 상대 사기에 휩쓸리기 쉽다.


외롭고 공허하기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어찌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늙어갈수록 자신을 지키려면 꿈과 아름다움이 절실하다.

부모님이 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도록,

이번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이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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