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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14. 2020

청춘들 스러지다.

활자로 만난 인물들

[색, 계], 장아이링 소설집,

김은신 옮김, 랜덤하우스



[색, 계]는 20세기 중국 출신 소설가 장아이링이 쓴 단편 소설이다.     

파격적인 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가 유명하니 많이들 내용은 알고 있을 텐데.

리안 감독은 영화 속에서 원작매우 충실했지만.

어디까지나 영화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산업이고.

또 연기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감독의 독자적인 해석이라.

직설적인 묘사 없이 커튼 뒤에서 아른아른 보일 듯 말 듯, 

간결하고 섬세 원작 소설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깔끔하게 상황을 그려낸 소설은,

실재한 암살 미수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는데. 

작가가 30년 가까이 수정을 거듭한,

잘 다듬어진 영롱한 보석 같.



소설도 영화처럼 지아즈가 주인공이고.

항일 비밀 단체의 대학생 아즈와 친일파 정권의 선생이 나누는 비련이 이야기의 축이다.

처음에 소설을 읽었을 때는 나도 그 사랑에 초점을 맞춰서,

아,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은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탄식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2차 세계대전 말기,

친일파와 군벌들과 마오의 무리들이 중국 각지에서 패권겨루던 무정부 같은 상황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내팽개친 각자도생 우왕좌왕하는 국민들.

비참한 혼란상에 젊은이들은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그래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

소설 속 비밀결사와 '프리 홍콩'을 절규하는 홍콩 청년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던졌그 시대 청년들의 처절한 몸부림 크게 다가왔다.

 


작가는 청나라 말기의 거물 이홍장의 증외손녀이고.

불행한 가정의 천재 소녀였으며.

실제 친일파와의 짧은 비밀 결혼 생활,

마오쩌뚱의 중국을 떠나 망명길 같았던 미국행 등.

중국과 시대의 어두운 면이 작가의 굴곡진 인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러 작품에서 작가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당시 중국 상류층의 생활상과.

쇠락해가는 그들의 허무감과 초조함, 황폐한 내면을 관찰하듯 자세히 그려냈다.     

그래서 장아이링의 소설을 읽으면 작가와 작품의 분리가 어려운데.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당시 청년들의 심정에 공감하여,

그들의 절망보여주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당시 중국에서 친일파 하나 암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 같지도 않고.

어이없이 희생된 청년들만 아깝고 안쓰러운데.

그렇다고 사리사욕만 탐할 뿐.

국민들의 삶에는 관심 없는 부패한 정치인들을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었겠지.

무모하더라도 몸을 던져 희생하며 정의를 외치는 이들이 있어야,

행선지를 옳은 방향 쪽으로 끙끙,

한 발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물들의 배경에 관한 설명을 제외하면.

소설에서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은 어느 날 오후에서 밤까지이다.     

여러모로 짧은 이 소설 속에는 그 시기 상하이 풍경, 2차 세계대전 말기의 중국 정세, 민중들의 고난, 친일 정부 사람들의 행태, 청년들의 항일운동- 같은 여러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일제에 의한 참혹한 남경대학살의 기억이 생생하고.     

수십 년 계속되는 내란과 전쟁으로 굶주림과 죽음은 일상적이며 화폐가 무용지물일 정도로 민생은 파탄 지경이다.     

그러나 친일 권력자들과 그 부인들은 민생  자금으로 여자들을 바꾸고,

보석을 척척 사들이며.

밀수꾼을 통한 온갖 사치품으로 몸과 집을 치장한다.     

목숨을 이어낼 수 없는 국민들의 비참한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해진미로 그들의 미각은 호사를 누리고.     

권태와 무위로 남아돌아가는 시간은 마작과 시기, 암투로 흘려보낸다.                 



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상당히 낙관적이고 이상주의자인데.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이란 그리 올바르지도 않고 정의롭지는 더더욱 않으며.

공평과 합리성 따위는 진작에 개나 줘버렸다고 판단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들께서는.

라 모르겠다, 양심 같은 게 어디 있나.

무슨 짓을 해서든 권력과 돈을 손에 쥐면 장땡이라고,

호의호식으로 내 배만 뚜드릴 것!

그렇게 입장을 정리하신 것 같다.



소설 속 친일파들이 단지 그 시대만의 문제겠는가.

여차 하면 못난 인간의 탐욕은 그쪽으로 돌아간다.

한 번의 승리가 앞날의 해결책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소설 속 상황은 넘겼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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