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배우, 2 배우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평생 본 영화가 수십 편도 안 될걸.

극장에 가는 일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드라마에 흥미가 별로 없다.

길 건너 건물에 멀티플렉스가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몇 년 살았었는데,

끌리는 영화가 걸릴 때마다 보러 가야지- 했지만.

이사 나올 때까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 평은 읽기 때문에 영화 쪽의 대체적인 흐름은 안다.



우리 어릴 때는 T.V. 드라마보다 극장 시대였다.

둥근 함석지붕을 인 건물 전면에는 영화 한 장면을 배경으로 하여,

출연하는 배우들의 얼굴들이 크게 그려진 초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가족들과 외출할 때 길을 지나면서 이 꼬마는 영화 간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

어느 극장에나 신성일은 고정,

상대역 여배우 트로이카는 번갈아서.


그 시절에는 여배우 사진을 담은 달력이 유행이어서,

특히 식당에 가면 한복을 입은 홍세미가 얌전하게 웃어 보인다거나.

대담하게는 모래밭에서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막 헝클어뜨린 언니가 몸을 비트는, 그런 모습도 있었다.



영화로 본 적은 없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 아버지 얼굴과 참 닮아가던 신성일 배우는 기사가 눈에 띄면 보곤 했다.

젊어서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영화 시대가 저물고.

또 멜로물, 청춘물 주인공이어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영화에서 맞는 배역을 찾기가 어려웠겠다.


우리나라가 힘들었던 시절에,

고달픈 청춘들의 삭막한 정서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많은 소녀들의 마음속 연인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었던 배우인데.

나이가 들어도 세속적으로 지친 생활인이 아니라,

말끔하게 댄디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아내는 생활인으로 가정을 꾸려가야 했겠지.




젊어서 앳된 미소년으로, 꿈처럼 하늘에 동동 떠있던 배우가.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험난한 세상에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차곡차곡 연륜이 쌓이는 모습도 좋지.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푸르른 청춘시절,

뜨거운 가슴과 촉촉한 눈빛으로 사랑과 꿈을 고뇌하며 우리를 설레게 했던 배우가,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힘이 빠져도.

마치 누추한 현실에서 쏙 빠져나온 비현실적인 표정으로,

끝내 세속적이지 않은 영화 속 이미지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욕심도 있으리라.


그래서 결코 돈의 기술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청춘 배우의 책임감으로.

마지막까지 말쑥한 청춘스타의 외양을 지켜냈던 배우와

그 모습이 가능하도록 배우 신성일을 이해하고 지켜준 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욕망에, 세속에 푹 빠져 살면서 겉모습만 관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영화 속 인물의 마음으로 살아야 가능한 것.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분들도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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