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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04. 2021

찌질함에 대하여

활자로 만난 인물들

[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문학동네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16쪽짜리 짧은 소설이다.

남녀 사이 애정에 관한 심리를 다룬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인데,

이전에 내가 몇 개 읽었던 위화의 소설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싶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1남과 2여.

모두 청춘.

다들 아는 사이.

2여 1남과 각각 썸을 타는 중이다.

그 1남은 두 여자 모두에게 들이대저울질하신다.

똑같은 대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지.



소설은 원훙의 수다로 시작된다.

"남자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영화 보고 싶을 때 대신 표도 사주고, 며칠을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말린 자두며 올리브도 준비해주고. 교외로 나가고 싶으면 더욱 없어선 안 될 존재지. 필요한 모든 비용을 다 댈 테고 짐도 들어주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폰서인가."(177쪽)


더운 여름밤,

동네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대나무 침대며 등나무 의자에 모기장까지.

집에 있는 가구를 거리에 끌나왔.

동네 친구들 리핑과 원훙도 길에 내놓은 평상에 누워 누가 보건 말건 수다 삼매경이다.

때마침 리치강이 나타나고.

두 친구는 그를 " 멍청이",  " 멍청이"라 부르면서,  

서로 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고 깔깔거린다.



문화국에 다니리치강은 그녀들이 자신들보다 지위가 높다고 말하 '국가 간부'.

그녀들과 허물없이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리치강은 상하이의 인기가수 훙화의 콘서트를 여기서 연다면서,

자신이 담당한다고 뻐긴다.

두 여자는 땀을  리치강에게 달라붙어 값비싼 입장권을 공짜로 달라고 졸라대고.


표를 얻기로 하자 환호성을 올리더니.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둘은 곧 그를 "멍청이"라면서 리치강이 자신을 쫓아왔던 이야기를 서로 해대는데.

흠.

깔깔 기는 하지만 어째 좀 쌔한걸.



유치해 보이던 리치강은 훙화까지 끌어들여 작업에 성공했고.

승자냉정하다.

소설을 열었던 원훙은 마무리도 맡는다.

나의 것이 아직 아닐 때는 본마음을 감추면서 센 척, 아닌 척하지만.

어디 나를 떠받들어줄 사람 없나,

붕붕 떠다니는 바람 든 마음에 '국가 간부'라 직위는  충분히 위력이 있겠지.


경우는 다르지만,

청춘 시절에 친구끼리 한 이성을 두고 미묘한 경쟁 상태에 놓이는 일은 드물지 않다.

본심을 숨기면서 관심 있는 이성을 대상으로 친구끼리 괜히 험담을 하기도 하고.

상대 앞에서는 전혀 관심 없는 척, 연기도 하지.

좋아하는 이성 친구 앞에서 오버액션에.

도리어 밉게 굴고 괴롭히던 꼬맹이들이 있었다.

그런 찌질함은 평생을 가더라.


에효,

못났다.

흔히들 자존심 때문이라고 하지.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미숙함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런 찌질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헛된 이득을 구하거나.

바라기는 하지만 얻을 자신이 없을 때.

실패하면 괴로울 것 같아 미리 설레발치는 허약함이 아닐까.


덤덤하고 묵직한 고목처럼.

나이가 들면 어른답게 담백하니 공명정대하면 참 좋으련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날이 성숙해지고 훌륭해지는,

참다운 어른이 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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