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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16. 2021

시를 만드는 마음

활자로 만난 인물들

가끔 함민복의 시를 찾는다.

시에는,

슬픔으로 가득 찼으나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있고.

무력한 내가 어쩌지를 못해서 그저 고통스럽게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시를 읽으며 꺽꺽 목이 메고. 

울컥, 한숨이 올라오지만.

슬픔의 한가운데서 어깨가 축 처져있을 시인은 

오히려 맑은 눈으로 토닥토닥 우리를 위로해준다.

시 한 편이 장편소설 마냥 길고 긴 이야기를 담고 있구나.




[눈물은 왜 짠가]


아무것도 갖지 못해서.

찌는 여름날, 머물 곳 없는 어머니를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려야 하는 아들이 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당신은 못 드시는 설렁탕 집으로 들어가신다.

고기도 못 먹이는데 고기 국물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아들 그릇에 소금도, 깍두기도  어머니.


설렁탕집 주인은 무심한 듯 그릇에 국물을 더 부어주고,

깍두기도 더 갖다 준다.

처지가 막막한 아들이 눈에 밟히는 어머니 마음도 알고.

낯선 모자에게 인정 많은 설렁탕 주인의 따뜻한 마음도 알아챈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꾸역꾸역 국물떠먹을 수밖에.

꿀떡 삼킨 국물 한 모금이 짠 것은 소금 때문이 아니리라.




[그 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안 그래도 어렵게 사는 형은 뒤늦게 공부하는 동생 뒷바라지로 전셋집을 사글세로 옮긴다.

서글픈 가난의 흔적을 옮기면서 미안해서 죽을 지경인 동생.

이사를 도왔다고 짜장면을 사주는 형.

송구하고 안타깝고 퍽퍽한 가슴으로

형제 서로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한가득일 텐데.

시인 무심히, 

지런한 시장통 중국집 젊은 부부의 희망만 이야기한다.


바쁜 점심시간에 때마침 잠이 들어준 아가가 고맙고.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주문 전화에 서둘러 배달 나가는 남편의 명랑한 움직임.


캄캄한 나날에 어디선가 희망은 자라고 있겠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 한이 되어 가슴에 못으로 박히기 전에.

하, 하, 핫!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밝은 날이 꼭 오기를.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원고료는 삼만 원.

시집 한 권은 달랑 삼천 원.

그 시집으로 시인에게 돌아오는 몫은 겨우 삼백 원.


시인은 고달픈 시인의 생활을 넋두리하는 대신.

시 한 편으로 쌀 두 말.

시집 한 권으로 국밥 한 그릇.

시집 한 권의 인세로 굵은소금 한 됫박이라는,

통념을 뛰어넘는 교환 가치를 말한다.

시와 쌀과 국밥과 굵은소금,

모두 소중하기 짝이 없는데.

왜 우리 시대는 이들을 하찮게 취급하는가.




시인은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과 슬프고 힘겨운 나날 속에서.

그럼에도 함부로 발버둥 치지 않는 것은,

가야 할 길이 온당해야 한다는 철저한 다짐 때문이겠지.

자신이 겪어내는 고통에서 수정 같이 맑고 단단한 가치를 찾아내고.

이심전심 다른 이들 마음에서 우러나 따스한 마음을 읽어낸다.


고마워요, 시인.

탐욕이 출렁이는 거칠고 황량한  시대에.

희미하고 조용한 시인의 시가 과연 힘이 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시의 힘은 의외로 길고 깊어서.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때마다 찾아와

딱딱하게 굳은 우리의 마음을 오래도록 흔들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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