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다는 사람도 몸의 한두 군데쯤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나는 체력 거지에다 평생 관리해야 할 지병도 있다.
더해서 걸핏하면 넘어진다.
비 내리는 오늘도 길에 쭈욱 뻗으셨다.
쯥.
집에 와서 보니 다리에 시퍼런 멍과 함께 무릎이 짓이겨져 있네.
도대체 길에서 넘어져 구멍 낸 바지가 몇 개냐.
또 손톱, 발톱도 시원치 않다.
손발톱이 자꾸 부러진다.
부실한 신체로 꾸역꾸역 살아가는 중.
예전에 어느 봄날,
새로 입주하는 초대형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을 때.
단지 내 상가는 비어있거나 온통 부동산중개소들이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입주가 완료되고,
가을이 되어서야 신장개업 사인이 분주해지더라.
새로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면 부동산과 편의점, 그리고 어린이집과 학원, 세탁소와 소형 슈퍼마켓이 먼저 문을 열더군.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는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는 미장원, 카페, 빵집, 분식점, 식당, 옷가게 같은 생활밀접 상점들이 문을 연다.
내가 이사한 지 1년이 훨씬 넘어서 길 건너 1층에 제법 큰 규모의 미장원이 문을 열었는데,
창 쪽으로 네일 코너가 샵인 샵 형태로 자리 잡았다.
가봐야지?
덩치는 커다래갖고 조용조용 순둥순둥 한,
우리 조카 또래 청년이 네일숍을 운영했다.
내가 첫 손님이래.
피부관리업소나 미장원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그 동네 주민들은 네일에는 관심이 없는지.
개업하고 며칠 지나서야 내가 첫 손님으로 간 것이었다.
나 자신은 실속 없는 사람인데,
어느 가게나 내가 들어가면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온다고,
가게가 잘 될 거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지나다 손님이 있으면 내가 괜히 마음이 놓이고.
손님이 없으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첫 손님의 책임감으로 가끔 가서 어떻냐고 물어보면,
청년은 어렵다고 짧게 대답하곤 했다.
어느 날은 책을 읽고 있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문학, 역사 종류 책을 좋아한다고.
그런데 마음이 걱정으로 꽉 차 있으니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와요." 하더라.
나도 한동안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
책 덕분에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면서,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책 읽었던 시간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라는.
고리타분, 뻔한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오늘 빗길에서 쫙 넘어져 절뚝이며 빗속을 걷다가 문득 그 청년이 떠올랐다.
이사 나오기 전에 갔더니 당분간 쉰다고 하던데 어려운 시기 넘기고 지금은 잘 되는지.
다른 일을 찾았는지.
착하고, 착실한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으면 참 안타깝다.
에휴, 오지랖은.
나 자신이나 먼저 안타까워하자.
내가 그때 책만 읽으며 어려운 상황을 그저 견딘 것이 과연 정답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적당한 방법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에든 도전할 사람도 있을 테고.
가만히 견디는 것으로 마음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