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교회나 절, 또는 무속인 같은 '기도 전문가'에게 비용을 들여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며.
“...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 항상 자연을 제대로 생각하는 것, 자연을-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경배하는 것은 잘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렸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사람은 못돼 져요. 우리가 이제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면, 그건 우리의 수백 년을 더 힘차게 나아가게 해 주고 우리를 진지하게 대지와 더불어 순환하게 만들어 줄 장점이에요. 우리에게 삶을 더 빠르고도 복되게 느끼게 해주는 장점, 그러니까 우리가 붙들어야, 붙잡아야만 하는 장점인 거랍니다.....”
(58쪽, 로베르트 발저 지음, 김윤미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번역된 문장이 참 어려운데.
우리가 나의 차원을 뛰어넘는, 저~어기 어딘가의 높은 존재에게 갈구할 때,
우리는 지극히 겸손하고 낮은 마음이 된다.
기도를 하다 보면 지금 내가 바라는 소망이 부질없다든가, 그저 욕심일 뿐이라든가,
때로는 이건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어서 기도할 게 아니라든지, 하는 여과 작용이랄까.
기도를 하면서 내 안에 있는 뾰족하고 거칠고 헛된 것들이 스스로 걸러지고 다듬어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마음이 순해진다.
그러니까 소설 속 클라라의 말처럼 기도를 함으로써 내가 '좀 덜 못돼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고.
사람들은 기도가 이루어질 때 그 보답으로 자신의 무언가를 걸 테니,
그 보답은 대체로 세상에 이로운 착한 행위일 것이다.
결론은,
올해도 나는 기도하겠다는 나의 계획을 지키지 못했고.
그래서 2023년의 계획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운동하자.
마음과 몸에 튼튼함을 길러야지.
나이가 들어도 새해 계획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꿋꿋이 계획은 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