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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29. 2021

사랑을 했다네

활자로 만난 인물들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정창권 지음, 푸른 역사



원이 아버지에게

자네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는 두고 먼저 가시는가? 나와 자식은 누구에게 기대어 어찌 살라 하고, 다 버리고 가시는가? 자네는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 나는 자네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던가? 함께 누우면 내 언제나 자네에게 이르되 '이보소!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 힘이 없네. 빨리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소.(73쪽)


1586년,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한글로 쓴 아내의 편지이다.

어린아이 원이와 배 속에 아기를 남기고 남편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혼자 남은 아내는 사랑했던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이 편지는 저승길까지 같이 다.


수백 년이 지나 땅에 묻혀있던 이 편지가 미라가 된 원이 엄마와 함께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애절한 심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남존여비, 남녀유별,

딱딱하게 굳어버린 유교적 가부장제 조선의 이미지와 달리 서로 사랑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젊은 부부에 놀라기도 했었다.



점성술에서 부부는 사업적인 동료와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한단다.

젊었을 적 나는 결혼은 선택사항이고.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감정이 흘러넘쳐 결혼이 가능하다고 생각다.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는, 

알게 모르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실적인 측면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연애는 분명한 자기 영역을 갖는 개인이 동등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부분적인 인간관계이다.

결혼생활은 두 개인과 그들 각각 영역이 겹쳐지면서. 각자이해관계, 내면의 작동 시스템, 가치관 차이, 양육과 사회생활협력... 상대방 인격 전부와 부딪치면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내는 일은 쉽지 않.

거기에 더해서 서로에게 낭만적인 사랑까지 바란다..... 지난하지.


그래서 상대방을 탐색하거나 선택할 여지없이, 몇 가지 외적인 조건만 따져서, 어른들이 결정짓는 결혼을 했던 옛날 부부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생계를 함께 하는 부부로, 서로 아끼면서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조선시대 부부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서술 방식이 좀 거슬리기도 하고,

자료가 남아 있는 몇 가지로 한 시대의 모습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전에 읽은 다산 정약용도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멀고 먼 곳에서 길고 긴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족은 늘 서로 안위를 살피고 염려하는 마음을 전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난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한 축이 되었으리라.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만혼, 독신이 많았단다.

조선시대, 특히 후기에 들어 유교의 영향으로 결혼이 필수가 되었다고.

또 조선시대 전기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가

문벌 강화 등등의 이유로 사회가 경직되어서.

17세기 이후 특히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완고한 가부장제,

남존여비 팽배, 부계 적장자 위주로 변해갔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은 명문가 자손인데 청빈을 추구하는 가풍으로 가난해서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었다.

열여섯에 동갑내기 전주 이 씨와 결혼한 뒤 비로소 장인으로부터 맹자를 배우고.

처숙부에게서 사기를 배우며 문장 짓는 법을 대강 터득할 수 있었다.

장인은 사위를 아들처럼 여기면서 애지중지 가르치고 꾸짖은 스승이었다.

가난 때문에 부부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무척 고생했는데.

'아내는 마치 가난을 견디며 학문하는 군자' 같은 사람이었다.(144쪽) 남편은 평가한다.



대체로 부인들은 가족에 헌신하면서 집안을 책임졌다. 남편이 선비답고 학문과 바깥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이끌고 보살폈다.

남편은 아내의 고생을 알아주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고 떳떳한 사회생활을 할 때 기뻐한 듯 보인다.

평생 동반자가 되어 동고동락한다는 건 주고받는 무조건적인 헌신과 이를 알아주는 고마운 마음이 있어야겠지.


예전에는 일단 결혼을 하면 운명으로 묶여서,

혈연보다 더 진한  가족이 되는 것이니,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지금과는 임하는 자세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사랑한다며?

눈 동그랗게 뜨고 숙제를 대충 떠넘길 수는 없는 상황.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남긴 자료들이니 극히 일부의 얘기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학문과 부임, 유배 등으로 결혼을 해도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고.

질병, 사고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으니 재혼하는 경우나 

부임지에서 첩을 두는 경우가 보편적이었나 보다.

저자는 첩이 부인과 대척점에 있는 연적이 아니고 신분이 다른 노비로,

혼자 가족을 떠나 임지에서 일하는 남편의 일상생활을 돌보는 임무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아내들을 무서워하는 남편들은 그 시절에도 있었다.

아내가 묻는다고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아내의 화를 돋운 남편은,

'.... 종일 투기하며 욕하니 지겹다.'

라고 일기에 대고 이른다. (88쪽)

아내가 무섭고 무조건 아내 말을 따라야 하고.

더해서 아내에게 얻어맞은 남편들 이야기가 세상을 떠돈다.

임금은 손바닥으로 용상을 내리치며...

'조선 남자의 씨가 마르겠소' 큰소리로 대책을 세우라 명령했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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