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섞어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밥은 밥대로, 다른 어떤 것이 묻지 않은 순결한 밥이어야 하고.
반찬은 반찬대로 그 반찬의 고유한 맛을 음미하고 싶다.
그래서 학창 시절,
도시락 하얀 밥에 반찬 양념이 묻는 것을 그리도 싫어했었다.
더구나 김치 국물, 장조림 간장이 흘러서 밥을 적시면,
치익, 눈꼬리가 올라갔다.
아, 내 하얀 밥!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섞이는 것을.
아니, 입까지 갈 것도 없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 위에 반찬을 올려 앙~ 입에 넣으면서.
도대체 무슨 까탈을 이리 부리느냐, 타박하시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빔밥이나 샌드위치는 먹는다.
김밥은 좋아한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미각은 애정 하지.
회덮밥도 잘 먹는다.
그러면서 덮밥이나 햄버거는 싫다.
내 입이 크지 않아 햄버거를 먹다 보면 재료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모습이 보기 흉해서이기도 하지만.
고기 맛이랑 채소 맛, 치즈와 소스가 뒤범벅으로 한꺼번에 입에 들어가는 게 싫다.
샌드위치도 마찬가진데? 하신다면,
그래서 내가 먹는 샌드위치는 종류가 몇 가지로 한정되어있다고 말씀드림.
덮밥은 밥에 반찬 국물이 배이는 게 싫다.
밥과 반찬이 한 그릇에 담긴 모양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달랑 밥그릇 하나 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모습에 선입견이 있는 것도 같다.
밥에 찌개 건더기를 부어서는 잘 먹는다.
고추장찌개라든가, 비지찌개는 큰 그릇에 밥을 넣고 찌개 건더기를 듬뿍 부어서 쓱쓱 비벼먹으면,
으~, 맛있지.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다.
단지 취향의 문제지.
아마 내가 자발적으로 컵밥을 사 먹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공산품 컵밥을 한번 사 먹어봤는데 그 재료의 빈약함과 센 양념에 놀랐다.
하긴 그 가격에 뭘 더 기대할까.
내가 집에서 만들면 그 비용으로 훨씬 건강한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결론은 기승전'집밥'.
간편하게 사는 건 포기했다.
이번 생에는 쓸 만한 일은 못하고 허겁지겁,
겨우 내 몸 하나 위해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까다로운 취향만 낑낑대며 맞추다 생을 마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