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연애사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우리 대학 때 "선데이 XX(대학 이름)"라고 불리는 애들이 있었다.

아마 학교마다, 무리마다 이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의 애정 문제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알고 있는 또는 짐작하는 남들의 썸, 연애사건을 즐거이 입에 올리는 사람 말이다.


이 용어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연예 주간지로 유명했던 "선데이 서울"에서 따온 것이다.

황색 잡지였던 그 주간지는 지금으로 치면 포털의 연예계, 스포츠 코너 같은 것으로,

유명인들의 아름답지는 않은 갖가지 스캔들을 주로 다뤘던 기억이다.

우리 집에서는 보지 않는 그 잡지를 내가 어떻게 알고 있냐면,

가는 데마다 그 잡지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의 신문 가판대에도 맨 앞에 놓여서 "충격! 누구누구 비밀 연애!",

뭐 이런 자극적인 제목들이 야한 차림새의 여배우 사진을 배경으로 눈에 확 띄게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직접 읽지는 않아도 "선데이 서울"이 그렇고 그런 내용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



하여간 그 "선데이 XX"는 학교를 다닐 때도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에 관심이 많고 틈만 나면 떠들어대더니만.

수십 년이 지나서 만나도 술기운이 오르면 누가 누구한테 마음 있지 않았냐?

라든가.

누구랑 누구는 잘 만나더니만 왜 깨졌지?

하면서 이야기를 그쪽으로 몰고 가려 한다.

으이구!


문제는 진위를 잘못짚은 것도 많고.

사실이라 해도 당사자들도 잊었거나, 잊고 싶은 흑역사 거나 한 경우도 있다는 거다.

그런 사람에게 CC는 평생 잘근잘근 우려먹는 술안주.

아이고 청춘의 한 때, 썸 좀 탔다고 평생 남의 입에 오르내릴 수가 있더라.


꼭 선데이들이 아니라도 연애사와 관련해 당황스러운 적이 있다.

나이 오십 넘어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로 옛날에 누가누가 나를 쫓아왔다고 자랑하는 아주머니들 보면 당황스럽다.

심한 경우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스토킹이라는 병적인 행동인데,

옛날에는 그런 행동을 박력 있고 남자답다고 여겼는지. 내게는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자기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자랑으로 써먹기도 하고.

그 정도가 아니라도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던 남자들을 떠들어대는 모습들이 가끔 보인다.



내 생각은 그렇다.

상대방이 진지하게 자신을 좋아해 주었다면,

내가 같은 마음이 아니어서 거절했더라도 그 마음은 소중하게 그 사람의 영역으로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지 않고 다만 청춘의 호르몬 문제로 내게 초점이 맞춰졌다면,

그건 더구나 말할 이유가 없지.

젊어서 부린 흘러가는 뜬구름이기에 그냥 잊어버리면 된다.


누군가가 내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좋은 마음을 가져주었다면,

고맙게 여기고 그 마음을 소중히 돌려주자.

나중에라도 떠벌이면서 자기 자존감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자.

자기는 싫다 해놓고는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가 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쟤는 날 좋아했는데 어쩌고" 하면서 심술을 부리기도 하더라.

나이 육십이 넘어도 그러고 산다.


에휴!

매거진의 이전글문득 장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