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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쏟아지는 날

혼자 살아가는 나날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심한 집순이라...

더해서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이어서 날씨가 나쁘면 외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니 우산도 있고, 장화도 있고.

겨울 추위에 쓰는 두툼한 모자와 장갑에, 털신에 목도리도 있지만.

날이 많이 나쁘면 집 밖으로 나가지를 않으니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혹시 약속이 있더라도 날이 궂으면 약속을 미뤄왔다.

나까지 이런 날 밖에 나가서 교통 체증을 보탤 필요는 없지,

하면서 당당하게!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궂은 날씨를 이유로 할 일을 미루기가 거북해졌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찌는 듯이 더우나 살이 에일 듯이 추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터로 간다.

그러니 날씨 때문에 잠깐도 외출하지 않으려는 나는 얼마나 안이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래서 필요한 일이라면 날씨가 나빠도,

외출로 몸이 힘들어져도 미루지 않고 씩씩하게 밖으로 나가려 마음먹었다.


지난 31일이 그런 날이었다.

하필 나는 짐을 들고 이동할 일이 있었고.

갈수록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폭우가 온다는 예보에서 이미 이럴까 저럴까, 내심 갈등이 있었지만.

그냥 예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언제까지 날씨를 피해 다니며 살겠는가.

짐을 들고 비에 젖어서 차를 타고 내리기도 번거로우니 그냥 걸었다.

30분 남짓?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방수가 약간은 되는 운동화를 신고는 짐을 들고 폭우 속을 걸었다.

몸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고.

다리와 발도 빗물에 푹 젖었다.

현관에서 우산을 접고, 짐을 내리고, 우비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신발을 벗으면서.

젖은 양말을 벗고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 손과 발 순서로 물기를 닦아내고야 실내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폭우 속을 걷기는 불편하다.

짐도 있는데.

물에 빠진 쥐가 되어서는 젖은 허물을 차례로 벗어내고 따뜻한 물로 씻고.

제습기로 뽀송뽀송해진 방에 들어서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비가 와도, 추워도 나갈 일이 있으면 나가자.

이제는 나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데 볼일은 미루지 말자.


그렇게 뒤늦은 배움으로 기뻐하면서,

개운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쳤다는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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